독일유학을 앞두고 프로걱정러 아내의 현실적인 고민들

어차피 일찍 잠 자기는 글렀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컴퓨터를 켰다. 나는 커피를 거의 올해 초부터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제 5개월차 햇병아리) 오늘은 왠일인지 친구들을 만나느라 세 잔이나 마셨다. 마지막 잔까지 원샷했더니 집에 오는 길에는 식은땀까지 난다. 배는 우글우글거리고 웩웩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딱 카페인 중독증상이다. 초보자가 너무 달렸다. 커피 세 잔이라니. 보통 한 잔에도 잠이 안 올 때가 많은데 세 잔을 드링킹했으니 오늘은 새벽 한시나 두시까지 뒤척일 것 같다. 잠도 안오는데 애써 잘 필요는 없지. 늦잠 예약하고 글 업데이트나 해볼까 하고 노트북을 켰다.

자. 뭐부터 써볼까. 알만한 사람은 알다시피 내 글은 정보성 글이 아니다. 딱 일기 수준이다. 나도 다른 블로거들처럼 어디엔 뭐가 어쩌네, 어디엔 이걸 해야하네 솔깃하고 진솔한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 쓸만한 짬밥이 안되는 것 같고, 그러자고 글쓰기를 놓고 있자니 아쉬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주저리주저리 대고 있다. 나의 이 허접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말이 나왔으니 정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대들은 진정 좋은 사람들입니다.

본격, 독일유학을 앞두고 프로걱정러 아내의 현실적인 고민들.

지난 4개월은 남편의 유학준비를 바라보는 아내의 입장에서 위태위태한 감정을 느꼈다. 유학을 가고 싶다고 동의를 구한 건 남편이고 나는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 입장으로서 별 도와줄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학원에 다녀야 하는 것도 남편, 점수를 올려야 하는 것도 남편, 부담감을 끝까지 이겨내서 버텨야 하는 건 다 남편의 몫이었다. 나는 옆에서 될 듯 안 될 듯 미묘하게 삐그덕대는 남편을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것밖엔 없었다. 아내로서 미래에 대한 막연함을 견뎌내고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역할.

지난 7월 첫주, 독일에 가는 게 정해지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다른 느낌의 불안감이 올라오고 있다. 좀 더 현실적인 걱정들. 고민은 너무 광범위하고 각각 달라서 뭐가 실제고 뭐가 아닌지 구분이 잘 안간다. 예를 들면 언제 가야할까. 우리가 가게 되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는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불리는 곳. 집 구하는데 3개월에서 4개월 걸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이상 걸렸다는 사람들도 많다. 부부가 독일에 간 몇몇 경우를 찾아보니 학생비자를 받을 사람이 먼저 독일에 가서 혼자 기숙사에 살면서 집을 알아봤다는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이런 글을 찾아 읽다보면 불안감이 자꾸 무럭무럭 자라난다. "우리는 고작 한달 전쯤 가려고 했는데." 한달 전은 조금 심한 것 같아 6주 전에 가는 것으로 바꿔 생각해봤다. 8월 14일쯤. 그랬더니 급 우울해지는 거다. "아직 사람들과 인사도 다 못했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급하게 보고싶은 사람들을 못 보고 가자니 이건 또 마음에 걸린다. 결정은 빨리 해야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 다음 당연하게 드는 고민은 "집을 한달 안에 구할 수 있을까"이다. 독일은 물가도 싸고 학비도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가려고 보니 남부는 말이 다르다. 집값도 어마어마하고 구하기도 어렵다. 집을 못 구하게 되면 생활비가 물처럼 줄줄 샐텐데. 내가 처음부터 남편과 동행하는 것 때문에 엄청나게 초기자금이 들어가는 건 아닐까, 내가 안 가는게 도와주는건 아닐까. 고민이 다른 고민을 가지고 온다. 지금 이걸 고민한다고 당장 해결될 것도 아닌데도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독일에 머리 누울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좋은 곳은 바라지 않는다. 두 사람이 누울 수 있으면 된다.

다음. "나는 가서 어학공부만 해도 될까"로 넘어간다. 독일 유학이 남편을 위한 계획이지 나를 위한건 아니기 때문에 "그럼 난 가서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안 할수가 없다. 나는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라 독일행이 정해지고 지금까지 생각한거라곤 "가서 독일어 공부하면 재밌겠다"정도. 그런데 이상한게, 이게 나 혼자 생각했을 때는 '완전 괜찮은 생각인데?' 싶었다가 다른 사람에게 혹시 설명할 기회가 되면 약간 구차해진다는 점이다. 이상한 경험이다. 왜 구차한 느낌이 드는거지? 변명하듯이 "나 노는거 아녜요. 나도 남편 못지않게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거에요"라고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운다. 안쓰러운 나. 애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까 말했듯이 고민의 범위는 넓고도 얕다. 그런데 이걸 다 쓰려니 너무 많고 다양해서 그만 줄여도 될까한다. 집주인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사기는 안 당할지, 남편이 영어 수업 적응을 그럭저럭 할 수 있을지, 좋은 공동체를 찾아 신앙생활 할 수 있을지, 석사 프로그램이 환상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두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을지. 참 고민도 가지가지다. 

독일로 부부가 같이 유학을 가거나 우리처럼 학생인 남편, 함께가는 아내의 경우도 많을텐데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 이런 불안정한 시기를 거쳤을 것이다. 버틸 수 있으면 가는거고, 못 버텼을 거면 애초에 갈 생각도 못했을거다. 여기까지 왔으니 막연함을 꽤 잘 다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앞으로 겪을 일들도 마주하다 보면 잘 이겨내리라는 낙관으로, 오늘은 여기까지만 고민하고 잠에 들어야지. 오늘도 역할에 충실했다. 프로걱정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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