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울려퍼진 아리랑

독일어 집중강좌 과정의 또 다른 재미, 인터네셔널 디너

나와 남편은 슈투트가르트로 이사오고 나서 9월부터 호헨하임 대학교(University of Hohenheim) 내에 있는 어학원에서 독일어 집중강좌를 듣고 있다. 방학 기간 동안에 진행되는 이 수업을 들으면 남편은 학점 인정도 되기 때문에 겸사겸사 교내부설 어학원을 신청하게 된 것이다. 

집중강좌 과정은 3주. 이 기간동안 내내 오전 오후 수업과 각종 그룹 활동으로 꽉꽉 차있다. 이 와중에 지난 금요일, 33개국에서 모인 70명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네셔널 디너 파티가 열렸다. 수업으로 지친 마음을 씻어주는 어학원 과정의 꽃이라고나 할까. 수강생들이 각자의 나라를 대표할만한 요리를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고, 나라 특색을 보여주는 작은 공연을 열어서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나와 남편은 정성스럽게 김밥을 말기로 결정했다. 마침 집에 김밥김도 있었고 속재료로 넣을 김밥용 우엉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딱이었다. 전날 함께 수업을 듣는 한국인 지인부부와 함께 아시아 마트에서 장도 보고 재료 손질도 해뒀기 때문에 우리 둘은 말기만 하면 됐다.


한국을 대표할 음식: 김밥!

당일 오후. 밥을 짓고 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간을 했다. 계란 부침, 당근, 김치, 오이, 단무지 등등 필요한 재료를 식탁에 하나씩 펼쳐놓으니 재료가 상당하다. 우리는 비건을 위한 김밥과 일반 김밥 두 종류를 준비하기로 했다. 비건 용으로 10줄, 일반 김밥엔 소시지를 넣어 10줄을 말았다. 헥헥. 쉴틈없이 밥짓고 말고 썰고 넣고를 반복하다보니 2시간이 지나있다. 시간맞춰 학교로 다시 출발할 시간이 다가온다.

말기는 박군이, 썰기는 내가.

김밥 두통을 묵직하게 들고 학교에 도착했다. 하나둘씩 학생들이 모이고 색다르고 신기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던 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테이블과 일반 테이블을 아예 분리해서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채식 코너의 음식이 먼저 가득 찼다.

김밥은 완전히 인기 폭발이었다. 우리가 워낙 넉넉히 준비하기도 했기 때문에 70명 가까이 되는 모든 학생들이 비건 김밥과 일반 김밥을 모두 맛보기에 충분했다. 

몇몇 친구들은 우리에게 찾아와서 "정말 맛있었다", "너네 음식이 최고였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아줬다. 한국의 맛을 소개했다는 이 뿌듯함. 내가 무슨 한국의 대표라도 되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집 떠나면 애국자 된다더니, 나와 살아보니 나도 한국인의 자부심이 있구나.

깨가 듬뿍 들어간 비건 김밥. 김치가 주 재료이다.

역시 이탈리아. 파스타와 피자를 준비했다.

레바논에서 준비한 티피컬 푸드.

구운빵 위에 빨간 토마토. 이탈리아!


독일에서 울려퍼진 한국의 가락, 아리랑

한참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고나니 벌써 9시다. 이제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쇼타임이 돌아왔다. 나는 미리 수업시간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얘기를 해 놓은 상태였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는지 진행자가 나에게 와서 다시 확인을 한다. 내가 가져온 기타를 보더니 "너 노래 할거지?"하고 되 묻는다. 아.. 떨려.

이건 정말 100% 자발적인 참여였다.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러본지 너무 오래됐다. 내 음악을 공유하고 나누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일인지. 게다가 한국의 음악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니. 

신나는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하려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렇게 분위기 업 되어 있는 파티장에서 분위기 망칠 일 있어? 당장 관둬" 내적 갈등이 갈 수록 심해진다. 동공 지진.

떼창과 떼춤. 젊은 친구들이 흥이 넘쳐 흐른다.

분위기가 정말 좋긴 했다. 나 말고도 8팀이 더 있었는데 춤과 흥이 넘쳤다. 유럽 대학생들의 분위기가 원래 이러는지. 춤 추자고 일어나라고 하면 다들 빼지도 않고 우르르 일어나더니 앞으로 몰려와 신나게 춤 추기에 몰입한다. 말 그대로 몰입이다. 누가 보던 말던 신난다. 

콜롬비아 친구들이 나와서 열정의 춤을 췄을 때, 이 친구들 거의 광란의 함성으로 환호를 보낸다. 스페인 아이들은 마카레나 노래를 틀었는데 전주가 한마디 나오자마자 환호성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앞으로 나오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굉음과 함께 다들 자리에서 벌쩍 일어나 앞으로 뛰어나온다. 다들 즐길거리가 나왔으니 어디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 하는 마음일까. 무슨 애들이 이렇게나 잘 노는지.

그런데 슬프고 민망하고 비극적이게도 나는 이 마카레나 춤바람 바로 뒤 순서였다는 것. 춤으로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나는... 처량하게도.. 아리랑을 부를 계획이었다.


통하였다, 음악으로

내가 준비한 곡은 '홀로 아리랑'. 가사는 전달이 어렵겠지만 이 곡의 멜로디, 조성, 가락으로 한국인의 한의 정서가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노래니까. 

30개국의 수강생들에게 한국을 소개할 아주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곡이 좀 처량하고 구슬프긴 하잖아. 스페인의 마카레나 뒤라... 내 차례가 되어 기타를 매고 앞으로 나가는데 이미 머리는 백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너무 고맙게도 다들 정말 집중해줬다. 내가 잔뜩 긴장하여 학생들 앞에 섰을 때 처음 느꼈던 느낌은 '존중 받는다'는 것. 모두가 내게 집중하고 있고 내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 경험은 정말 새로웠다. 다들 가사도 모를텐데.. 우리는 아리랑을 함께 경험하고 그 음악 안에 머물렀다. 

'격려'의 박수. 나의 '용기'를 축하해주는 분위기.

나는 노래하고 박군은 마이크 들어주고. 하하..

준비한 곡이 마치자 함성과 박수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한동안 박수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고맙고 또 고마워서 연신 고개만 숙였다. 음악으로 하나되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나에게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동시에 꽁꽁 묵혀두기만 했던 그 자유로움이, 음악을 타고 사람들과 만나는 느낌이 되살아나고 있다.

같은 클래스 친구들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내게 와서 안아주고 엄지를 치켜새워준다. 이런 마음 착한 애들같으니라고. 늘 옆 자리에 앉아 수업을 같이 듣는 스페인 친구는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음악으로 네 감정이 느껴졌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양손을 치켜들면서 최고였다고 표현해준다. 고마운 친구들. 매일매일 어려운 독일어 수업을 따라가다보니 동지애 비슷한게 생겼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려다가 가장 나다운 모습을 음악에 담았다. 아리랑의 곡조는 나 자신이 되어 흘러흘러 강당을 가득 채우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았을까.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음악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만나고 공감하는 경험은 참 신비롭다.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한국인이 전한 아리랑. 이들 마음에 한국의 곡조가 아름답게 남았으면 좋겠다. 


독일에서 부르는 홀로아리랑, 같이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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