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11월의 근황

제목에서 밝혔듯이 나의 11월은 정말 단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오늘을 살고 있는데, 날씨까지 흐리멍텅하니 날짜 지나가는게 더 구분이 안된다. 어제는 흐리면 오늘은 맑아야 어제 오늘 다른게 구분이 되는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햇볕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솜먹은 물마냥 무거운 구름이 하늘 전체를 덮고 있으니. 11월은 3주가 넘게 흐릿한 날씨만 가득하다.

그러다 최근에 햇볕이 조금 드는 날이 있었다. 지난 수요일에는 해가 아침에 뜨는 순간부터 질때까지 하루 종일 가득히 햇볕이 비췄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침일찍 눈을 뜨자마자 문이란 문은 다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발코니 문도 열어놓고 화장실 창문도 열어놓고 부엌창문 안방창문 활짝활짝 햇볕이 집안 곳곳으로 들어오도록. 햇볕이 이렇게 소중하다. 빛이 없으면 집도 사람도 켜켜이 먼지만 쌓이는 느낌이다.

햇볕이 들고보니 창틀에 낀 곰팡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춥다고 환풍에 게을렀더니 이런다. 우리집에 창틀에 낀 곰팡이를 신경쓰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퍼진다. 박군은 그야말로 부담스러운 11월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발표 발표 발표 조모임 조모임 조모임. 아침 일찍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제 먼지도 내가 닦고 물통의 물도 내가 채워두어야 한다.

찬란히 쏟아졌던 햇빛은 수요일 하루를 마지막으로 얌채같이 또 들어가버렸다. 햇볕과의 만남이 너무나도 짧았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이번 주는 돌아오지 않을 햇볕을 기다리며 시간을 탕진하는 재미로 아쉬움을 갈음하기로 했다.


집밥이 나를 울게 하는구나

여기서 한국 드라마나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채널은 소박하다 못해 안타까울 지경이다. 우리는 넷플릭스에 가입해서 종종 영상을 보고 있는데 그마저도 독일 아이피로 접속하는거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보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고싶은 드라마가 많지만 넷플릭스가 해외에서 제공하는 한국 드라마는 손에 꼽는다. 그 중에 내가 요즘 보고 있는건 '식샤를 합시다 시즌1'. 2013년도에 방영됐던 드라마인데 혼자사는 세 남녀의 '음식 라이프'가 주된 주제다.

보다보니 한식이 생각날때가 많다. 주인공이 어찌나 음식을 맛있게 먹는지. 한국에 있었으면 저것도 먹을 수 있었을텐데, 저것도 많이 먹었을 텐데 이런저런 입맛을 다시며 꼼곰히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며칠 전도 별 감흥없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별것도 아닌 장면이 나를 감상에 젖게 만든 것이다.

회사에서 시달릴대로 시달린 여주인공이 간직만 해뒀던 사표를 쓰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날따라 고향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어머니는 사회생활 하느라 고생한 딸에게 식탁 한가득 집밥을 차려놓고 딸이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슬픈 장면도 아니었고 감동적인 장면도 아니었는데 그 집밥을 맛있게 비워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나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 한국 생각이 절로 난다.

서러움이 폭발했던 포인트. 누룽지.

저게 뭐라고 나는 운단 말가!! 된장국에 계란찜, 동치미 반찬을 정말 맛있게 먹는 여자 주인공 모습에 빙의가 된 나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이 그리워 나홀로 숨죽여 흐느꼈다. 이게 무슨 청상인가. 계란찜에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누룽지에서 꼭지가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이 먹고 싶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반찬을 내쪽에 가깝게 놔주셨던 엄마가 그리운 마음과, 이제 내가 먹고싶은 건 내가 해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구나, 하는 깨달음이 섞여서 북받혔던 내 감정은 눈물로 쏟아져 나와버렸다.

그깟 누룽지 내가 해 먹으면 될 것을. 그깟 한국음식 여기서도 재료 사서 얼마든지 해서 먹을 수 있다. 어쩌면 집밥이 그리웠다기보다 가족의 품이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살았다면 별거 아니라고 여겼을 아주 사소한 것들이, 많이 그리워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맛있는거 많이 해먹고 잘 견뎌내야 한다. 단조롭게 흘러가는 나의 일상도 잘 수용하고 흐리흐리하지 못해 캐캐한 날씨도 아무튼간 잘 적응하고. 8시간이나 되는 한국과의 어마어마한 시차와 함께 나와 가족의, 나와 친구간의 그리운 생활의 간격도 받아들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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