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모양이다

남편이 페루로 가고 나서 나는 한동안 금단 증상을 겪었다. 늘 함께 있던 사람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이렇게 난감한 일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방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부엌에 한번 안방에 한번 거실에 한번 작은 방에도 한번. 볼일이 있는 사람처럼 아니, 해야할 일을 까먹은 사람처럼 부산하게 왔다갔다. 

집 밖을 나가야 할 때는 시동을 거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독일에서 열쇠를 잃어버렸거나 집에 두고 나간다면 그것만큼 재앙이 없으므로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 들어간다) 호주머니에 열쇠를 넣어 놓고도 몇번이나 손으로 만져보아야 한다. 교통카드도 빼놓을 수 없다. 교통카드를 제대로 챙겼는지 두번 세번 확인하고 문을 닫기 전에 한번 더 만져보고 닫는다. 집 열쇠는 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뭔가를 놓고 나왔다간 정말 큰일이다. 

혼자 살아본 적이 아주 없는건 아니다. 스물 세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수에서 혼자 자취를 했었다. 대단히 오랜 기간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늘 누군가와 함께 살았다. 일을 그만두고는 서울에 올라와 기숙사에서 지냈었고 기숙사에서 나오자마자 결혼을 했었으니까. 따지고 보니 혼자 2주간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게 거의 7년만이다.

별의 별 의미를 부여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심심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 넘처나는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확실히 더 많이 놀지만 혼자 놀다보니 논 것 같지가 않다. 역시 시간도 상대방과 같이 탕진해야 재미가 두배가 되는가. 아. 옛날이여.

아까 오후에 남편과 잠깐 통화를 했다. 남편에게 혼자 있으니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고 했더니, 남편은 자기는 숨을 곳이 없어서 괴롭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24시간 영어 영어 영어 수업 수업 수업인 샘이다. 설명을 알아들어야 하니 긴장해야 할 것이고 뭐라도 말해야 하니 골치가 아플 것이다. 가엾은 박군.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겠지. 곧장 쉬지도 못하고 시험에, 시험 끝나면 바로 2학기 시작일텐데..

저녁밥을 대충 때웠더니 속이 허해서 친한 언니가 무려 우편으로 공수해준 쥐포를 두 장이나 씹어 먹었다. 왠만한 성인 얼굴 크기의 대형 쥐포 두 장을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웠다. 배가 고팠다기 보다 마음이 허전해서 그랬겠지. 애꿎은 속만 텁텁해졌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더니 위에서 쥐포가 다섯 장으로 불어난 것 같은 느낌이다.

꿈지락 거리고 우물쭈물 거렸더니 시간이 금방 간다. 벌써 잘 시간이다. 요즘은 8시간씩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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