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만한 달이 지붕끝에 걸려있다

어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한적한 저녁. 남편과 함께 발코니로 나왔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집의 지붕에 접시만한 달이 걸려있다. 아주 동그랗고 말갛게 노란 달이 손에 잡을 듯한 거리에 놓여있다. 그래, 이 정도면 뭔가 써 볼만 하겠어 하고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다가 무심코 다시 달을 쳐다봤는데 그 사이에 동그란 달이 지붕 끝에서 하늘 위로 올라섰다. 아주 짧은 순간, 달하고 지붕하고 멀어진 거다. 찰나는 왜 이렇게도 짧은 건지.

눈으로는 현상을 목격하지만 그걸 글로 옮겨담기에는 쉽지 않다. 방금처럼 현상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글로는 옮겨담기 어렵고 그걸 묘사하기에는 글빨의 한계가 느껴진다. 볼 때는 쓱 보고 쓸 때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주 극히 일부를 옮기는 것과 같다. 내 식의 필터는 많은 것을 거르고 없는 것을 더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달을 계속 흘깃거리고 있는데 계속 하늘은 짙은 남색이 되어가고 달은 선명하게 노랗게 반짝거리며 위를 향해 뜨고 있는 중이다. 어둠이 찾아오려나보다. 슬그머니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다.

그동안 글을 못 올렸는데 갑자기 이런 현타가 왔기 때문이다. 내 글은 일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질문이다. 내가 적은 글에 대한 회의가 한번에 몰려왔다. 나는 뭘 쓰고 있는 걸까. 뭘 했고, 뭘 느꼈고?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쓰는 글이 괜찮은지, 뭔가 지루하고 그저그런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는건 아닌지. 그냥 에라 모르겠다 나는 지금 글쓰기 슬럼프다, 라고 말하면서 글도 안쓰고 핑핑 놀기만 했다. 게을러지고 싶기도 했고. 시간은 참 잘 갔다.

어둠이 완전히 하늘을 덮으면서 달은 아까보다 더 선명해졌다. 달 표면에 거뭇한 부분조차 보일 지경이다. 참 곱기도 해라. 저 달 표면 어딘가에서 토끼는 절구를 빻고 있으려나. 뭔가 반짝하고 방금 빛난 것 같기도 하다. 절구빻는 토끼가 신호를 보낸 거라 생각하겠다. 

신기한게, 발코니에 아까부터 앉아있었는데 어느 순간 스위치를 켠 듯이 풀벌레 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볼륨 스위치를 누가 서서히 아무도 못 알아차리게 올렸는지. 아주 훌륭해. 풀벌레 우는 소리에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동그란 달이 가득 빛을 비춰주고 있고. 바람은 선선하고 나는 여기에 지금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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