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의 위기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더니 그 안에서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툭 튀어나왔다. 지난 1년동안 독일에 거주하면서 속 시원하게 해결된 적이 없고 해결되지도 않은 채로 질질 끌어왔던 문제, 보험이다. 

비자 연장 신청을 위해 이제는 보험문제를 곪은 상태로 두지 않으리라 하고 보험회사에 찾아갔던 8월 중순은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이 열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나의 최악의 기준이 점점 더 낮아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보험의 전체 취소. 학생보험으로 들었던 작년 11월부터의 내 기록과 남편의 기록을 전체 철회 시켜버린 것이다.

작년 학교 입학이 불발되고 나는 즉시 보험회사를 찾아갔다. 학교 측에 철회 입장을 밝히기도 전에 나는 보험에 계속 가입한 상태로 있을 수 있는지, 일단 학생보험으로 발을 들여놓았으니 여기에서 일반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어가 짧았던 나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지인을 대동하여 내 상황에 대해 상세히 전달을 했었는데 결과는 다행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일반으로 전환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왔는데..

그 서류가 사라졌다는게 보험회사의 말이다. 내가 12월에 와서 상담을 받고 신청서를 썼다는 기록이 없다는 거다. 그래놓고선 왜 이제야 왔냐고 나무란다. 이 시점에서 나도 자책감이 들어 머리를 싸맬 수 밖에 없었다. 1월까지는 서류를 기다렸지.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임신과 유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경황이 없이 3월이 됐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독일어 과정 끝나면 가야지, 취직해서 가야지. 미루고 미루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데는 분명히 내 잘못이 있다.

학생으로 등록된 적이 아예 없다는 학교측 입장 때문에 11월자로 등록했던 보험기록 자체가 철회됐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독일에서는 보험없이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이 사실을 남편 학교가 알게 된다면 어쩌면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절망감만 가져왔다. 보험회사를 나서면서 울고 또 울고 집에와서도 울고. 보이는 상황이 너무나도 절망적이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평화롭게만 보인 독일 생활에... 금이 가고 있다.ㅎㅎㅎ

유산으로 응급실에 다녀온 것만 벌써 몇 번이며 구급차를 불렀던 기억. 모든 게 짐처럼 따라왔다. 보험커버가 안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내가 부담해야 한다. 절망이 이렇게 무섭다. 계속 더 나쁜 생각으로 침몰하게 한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지인의 조언으로 우리 교회 한 권사님께 연락을 드려보기로 했다. 이 지역에서 오래 거주하고 계신 분이라 사정을 들으시면 뭔가 도움이 될 부분을 찾아주실지도 모른다고. 그야말로 물에 빠진 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권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흔쾌히 도와주신다고. 시간을 내주셔서 다음날 한 걸음에 댁에 다녀왔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이 열린다." 많은 말씀 중에 마음에 강렬하게 꽂힌 문장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에 살면서 산전수전 모두 겪어보신 권사님의 경험이 짙게 녹아 든 말씀이었다. 이런 일로 절망하지 말라. 엄청난 위로가 됐다. 

아직까지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다. 이번주 수요일 병원 진료도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불안한 상태다. 이미 보험이 취소가 되어버렸는데 수요일에 병원은 갈 수 있을까. 앞으로 새로운 보험은 어떻게 들 수 있을까. 보험사와 얘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답답하지만 '이런 일로 절망하지 말자'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풀이 하고 있다. 세상 살이 어떻게 큰 문제 없이 평탄 하기만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문제 앞에 선 나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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