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식구가 생겼다 :)

우리 부부에게 최근 가장 큰 문제였던 보험 문제도 해결되고 더할나위 없이 마음이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요즘 작년과 달리 선선하고 기분좋은 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하루하루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걸 느낀다. 어학공부도 목표했던 B2까지 마쳤고 부모님과 2주간의 유럽여행도 끝이 났다. 이쯤 뭔가 새로운 걸 해보리라 년초에는 기대했던 바가 있었는데 지금은 쉬는데만 열중하는 중이다. 우리 부부에게 새식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두줄이 의미하는 것

지난 7월 중순쯤 생리예정일을 앞두고 난데없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느껴졌다. 이거... 몇 번 느껴봤던 증상인데. 목 뒤가 쌔해졌다. 고이 모시고 있었던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결과는... 희미한 두 줄. 기쁨과 환희보다는 아... 이거 어쩌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캄보디아에서 첫 번째 임신을 경험했을 때, 그때는 정말 웃고 들뜨고 기뻤다. 독일에 와서 두 번째 임신을 확인했을 때는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테스트기에 떠오르는 두 줄이 의미하는 것이 완전한 임신 선고가 아님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보게 된 이 두 줄은 내가 또 한번 겪어야 할 아픔일 수도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우리를 훑고 지나간 쓰린 아픔이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우리는 가능성이 한번 더 찾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하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두번이 세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두려워하면서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우리가 한번은 마주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일단 집근처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예약 먼저 잡았다. 다행히(?) 2주 뒤에 오라고 한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기간을 지나..

유산을 알리는 징후는 내 경우 두번 모두 대략 5주에서 6주쯤 나타났었다. 갈색 혈로만 비추던 피가 색은 진해지고 양은 점점 더 많아지면서 그렇게 막을 내렸었다. 첫 번째는 수술로 아기집을 들어냈고 두 번째는 약으로 배출했다. 부디 이번에는 피를 보지 않기를 얼마나 마음 조렸는지. 마침 어학원도 끝났겠다 집에서 누워 쉬면서 충분히 무리 가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2주간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산부인과 진료를 가는 날이 돌아왔다.

검진 결과는 임신 6주 3일로 아기집에 들어선 콩만한 배아를 관찰했다. 0.48mm란다. 앞선 두 번의 임신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배아의 존재를 보고 이로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느껴졌다. 잘 붙어 있었구나. 임신이 맞구나.


나의 경우는 유산의 경력이 있기 때문에 2주에 한번은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좋을텐데...(이건 내 의견) 정말 애석하게도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가 여름휴가로 5주간 문을 닫는다고 한다. 무려 5주간이나!!! 독일스럽다. 의사는 쿨하게 6주 뒤에 보면 어떻겠냐고 예약을 잡아준다. 그 사이에 피를 본다거나 배가 심하게 아프다거나 하는 응급상황이 생길 경우에(그럴때만) 전화를 걸라며 주변 산부인과 연락망을 전달해 주었다. 응급 상황...이 아니면 괜찮겠지. 그래.

이제부터 엄청난 기다림이 또 시작됐다. 온갖 걱정과 염려 속에서 마음을 다잡기는 쉽지 않았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증상없이 유산되면 어떡하지, 하루도 염려없이 지나갔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임신 8주차, 9주차에 부모님이 독일에 오셔서 2주간 같이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다. 괜찮겠지,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니겠지. '다 괜찮을 거야'라는 식의 희망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태명이 희망이 :)

정말 무식이 용감하다고 부모님과 함께 파리와 로마를 여행하면서 하루에 이만보 이상씩 걷고 싸돌아다니는 강행군을 펼쳤다. 그 와중에 입덧까지 점점 심해져서 아침이면 토하고 입맛은 실종되고 하루종일 울렁거리는 위를 붙잡으면서 여행을 마쳤다. 아. 비자연장과 보험문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중 틈틈이 걱정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ㅎㅎㅎ) 이 모든 체력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문제들을 뚫고.. 비자도 잘 연장이 됐고 보험 문제도 이렇게 해결되었으니 지금으로선 얼마나 다행인지.


12주차에 드디어 산부인과에 내원해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희망이를 만날 수 있었다.. 희망이는 0.48mm에서 5.58cm로 10배이상 컸다. 팔 다리도 길쭉길쭉하고 팔 끝에 달린 손가락도 다 달려있는.. 작은 인간이 자궁 속에 자라고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가슴이 벅찼다. 또 한번 임신을 확인하는 기쁨.. 마음이 놓이면서 어떤 문제든 뚫고 나갈 기쁨이 생겼다. 실제로 수요일에 진료를 보고 목요일에 보험이 해결됐으니 희망이가 정말 우리의 희망이 되어준 샘이다.

우리는 희망을 품고 있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셋이서 보내는 이번 겨울은 조금 덜 추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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