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단원이라는 이름 좋은 허울

한국에서 몸조리도 잘 했고 이번주 월요일부터 다시 근무도 시작했다. 이 와중에 뜻밖에 감기가 찾아와서 월요일부터 골골대는 중이다. 덕분에 지난 3일간은 퇴근하고 집에오면 씻고 저녁먹고 애저녁부터 들어누웠다. 오늘 아침은 좀 가벼운 몸으로 일어난 편이다. 빡샌 인수인계와 넘치는 잠으로 이제 캄보디아에서 남은 3주는 2주로 좁혀지고 있다.

내가 바라지 않아도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 중이다. 나의 애증의 캄보디아. 사람들도 좋고 첫번째 외국생활로도 좋았으나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 이제 내 평생에 이런 식으로 봉사단원으로 살아볼 날이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어디서든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할 수는 있겠지만 '봉사단원'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아래 가려진 근무는 이제 끝이다. 아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속이 다 후련하네.

캄보디아의 해가 지고 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 봉사단원이라는 삶의 실상에 대해, 현실에 대해 말해주는 곳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파견오기 전 2주간의 합숙교육은 이상에 불과했다. 도움 없이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저 머나먼 타국에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취약하고 의존적이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얼빠진 틈 속으로 '봉사단원이니까 하는 A to Z'는 얼마나 무섭게 내 삶을 꿰 차고 들어 앉는지 나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월 90만원의 보수로 위안을 삼으려고 해도 이건 '봉사 수준의 노동이 아니다'와 '그래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왔으니까' 사이에서 1년 내내 씨름하고 괴로워한다. '해외에 왔으니까 여행도 다니고 얼마나 좋겠어'라는 생각은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해외에 나왔는데도 주중이고 주말이고 그저 업무에 매여있는 나를 보며 '지금이라도 그만 둘까'와 '여기까지 왔으니까 버텨보자'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게 여기까지 오게 했다. 

나는 어찌어찌 끝까지 버텼지만 그래서 잘했다고 볼 수는 없다. 중간에 멈춘 단원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야 1년간의 생활이 너무 좋았고 값졌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나는 대부분의 단원들이 '지금이라도 그만둘까'와 '조금만 더 버텨볼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우물쭈물 1년이 흘러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 좋으라고 왔으나 너 좋은 일이 되어 버린, 너 좋으라고 온것이라 하나 왜인지 나는 뭔가 뺏긴 기분이 드는, 이 이름만 좋은 허울을 이제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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