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비자신청은 처음이지?

드디어 우리에게도 그 날이 왔다.

우리는 관광비자로 독일에 들어왔기 때문에 3개월이라는 기한 내에 빨리 학생비자로 변경이 필요했다. 비자신청 전까지 해결해야하는 관문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가야할 길이 참 멀다고 느껴졌는데. 여기까지 오다니. 눈물좀 닦고..(ㅠㅠ)

독일은 문서가 까다로운 나라이기도 하고, 사람마다 기준도 제각기 다르다는 말이 많다. 박군은 석사과정 입학으로 왔기 때문에 확실히 비자를 받을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긴장이 되는건 어쩔 수가 없는걸.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다. 비자를 신청하려면 독일 보험에 가입이 되었다는 서류가 필요하는데, 우리가 드는 TK 공보험에서는 1년이상 비자를 받아야 보험을 들게 해준다는 거다. 

용케 박군의 학교를 담당하는 TK 담당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증명서류를 (야매로) 받았으니 이렇게 신청할 수 있는거지, 그쪽에서도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얘기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통장개설도 마찬가지다. 같은 도이체방크인데 어떤 지점에서는 비자가 있어야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고 하고, 다른 지점에서는 또 비자 없이 만들어주고.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은데도 뭔가 일처리가 생소하다. 여기는 독일이다.

안녕. 케바케의 나라 독일.


날씨마저 완벽한 하루

오늘은 날도 오락가락했다. 아침엔 온 도시가 안개로 자욱하고 추위가 짙게 깔려있었다. 최고기온은 18도로 분명 확인을 했는데 아침 바람에서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이미 겨울이다. 얇은 패딩잠바를 입고 후다닥 학교로 달려갔다.

오전 독일어 수업 중간에 쉬는 타임에 잠시 공기를 쐴까 하고 밖에 나왔는데 이게 왠걸. 구름하나 없이 쨍쨍한 햇볕이 지면을 비춘다. 오랜만에 햇살을 맞았더니 온몸이 노곤노곤해진다. 가을로 접어들고부터 벌써 태양이 나와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햇살이 비추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햇볕이 잠시 비춘 호헨하임 대학의 정원. 이때의 독일 하늘은 천사가 따로 없다. 날이 추워지면? 상상에 맡기겠다.

수업을 마치고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날이 좋아서인지 발걸음도 가볍다.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분. 우리 둘 모두 무사히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슈투트가르트 외국인청에 방문했다.


어서와 비자신청은 처음이지?

우리가 준비한 비자 서류는 다음과 같다. 1) 슈투트가르트 비자신청서, 2) 학교 입학서류, 3) 혼인관계증명서, 4) 슈페어콘토(fintiba), 5) 도이체방크 통장잔고 서류, 6) 보험 가입서류, 7) 안멜둥 서류 원본.

비자를 신청하는 층으로 올라가면 이름따라 방이 나눠져 있다. 박군은 성이 Park 이기 때문에 P를 담당하는 방문 앞에서 기다렸다. 코너를 꺾어 'P' 방 앞에 도착했는데 살짝 당황했다. 방문 앞 복도에 의자가 놓여져 있는데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질서 없이) 앉아 있는거다. 번호표도 없는데.

그.. 그냥 눈치껏 앉으세요.

눈치게임 하는 것도 아니고. '딩동'하고 초록불이 들어오면 다음사람이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누구 다음에 내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몰라서 상황파악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사람이 또 무지막지하게 많은 건 아니라 순서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엉덩이를 몇번이나 들썩들썩 하다가 어느 시점이 오자 우리 차례가 온 것 같아 벌떡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내 또래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줬다. 준비한 서류를 내고 학생비자와 동반비자 신청을 하려고 왔다고 하니까 대충 서류를 검토해보더니 말한다. "학생분은 학교 다니셔야 하기 때문에 바로 내어드릴 수 있는데요. 아내분은 지금 저희가 조금 바빠서 바로 내어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일단 서류 검토를 먼저 할테니 밖에 나가서 기다려주세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런 느낌. 놀라지마세요. 서서 모든 업무를 처리합니다. (출처: 구글사진)

한 30분정도 기다렸을까. "Herr Park, Bitte(Mr.Park 들어오세요)"라는 안내음성을 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박군은 1년짜리 비자를 받아 이미 여권에 비자가 붙어 있는 상태였고, 나는 당장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며 테어민을 잡아주었다. 이유는, 지금 자기들이 하는 업무가 너무 바빠서 여기서는 줄 수가 없고 테어민을 잡아서 신청을 따로 해야한다는 거. 

우리가 방문약속(테어민)을 잡고 왔다면 둘 다 받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비자 신청하시려는 분들 테어민 추천합니다!) 지난번에 도이체방크에서는 테어민을 잡고 직원과 따로 방에서 업무 처리를 했었는데, 뭔가 긴밀히 도움을 받는 느낌을 받았었다. 

비자 신청도 마찬가지로 테어민을 하고 갔다면 당일 안에 우리 둘의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특별 케어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테어민 잡으려면 시내 관청 124번 방으로 가셔야 한답니다.)

그냥 무작정 갔다간 아니되오. 업무 시간은 꼭꼭 확인!

"테어민 없이 당일에 받는 비자업무 시간" 월/수: 8:30-13:00 / 화: 8:30-13:00, 14:00-16:00 / 목 8:30-13:00, 14:00-18:00 / 금: 8:30-13:00

내가 어학비자로 신청했다면 바로 나왔을 수도 있을텐데. 아무튼 1주일 뒤에 다시 여권만 들고 방문하라는 말을 듣고 쿨하게 관청 밖을 나왔다. 어쨌든 후련하다. 한 명이라도 비자를 일단 받았으니 다음주에 내가 동반비자 받는건 시간 문제니까. 와. 비자까지 받았다니 이제 기반이 자리잡았다. 


이제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비자신청을 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면서 나는 많이 긴장했다. 머리 속으로 온갖 불행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보험 회사에 전화해서 우리 보험 든거 맞는지 확인하면 어떡하지", "안멜둥 서류에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비자 신청서에 뭐 실수한 내용은 없나?", "가족관계증명서는 제출 안했는데 상관 없겠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새로운 근심거리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다 괜찮아 질거야. 조금 적응한것 같다가도 금새 어색해지고 마는 나. 외국인으로서 타국에 살아간다는 게 이런 일들을 겪어 나간다는 거겠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작고 큰 풍파를 견뎌내며 지금도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박군과 나도 이제 독일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나저나 먼저 이 추위부터 적응해야 될텐데.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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