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위해 쓰는 독일병원 출산 후기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고 괴로웠으며 고독하게 통증과 씨름하고 절규했던, 한편으로는 가장 신비롭고 경이로웠던 분만실에서의 기억을 되새겨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나쁜 것은 모두 흐릿하게 만들고 좋은 추억들로만 바꿔지기 충분한 시간인 듯하다.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이었기에 내 뇌가 애써 그 기억을 지워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더 흐릿해지기 전에, 독일 병원 분만실 안에서 느꼈던 감정과 고통을, 내 안에서 따뜻한 어떤 존재가 나로부터 나와 가슴 위에 올려졌을 때의 그 경이로움과 황홀감을 기록해본다.

주의: 이 길고도 긴 글을 요약하자면 "나 엄청 아팠다, 진짜 아팠다" 밖에 되지 않으니 관심없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시면 되겠습니다.

 


 

출산 전날, 왠지 오늘 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슬이  비추고 꼬박 3일이 지난 날이었다. 3월 22일 금요일. 남편과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날을 보냈다. Kaufland에서 장도 보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물며 집으로 돌아왔다.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 와인 밭이 더 반짝거려 보였다. 봄이 오는구나. 어느 시점을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들이닥친 봄의 내음을 느끼며 우리 아기도 좋은 타이밍에 나오겠지, 생각했다. 이 날은 어쩐지 잠에 빨리 들었다. 10시쯤. 새벽에 언제 깰지 모르니 남편에게도 함께 자자고 그랬다. 내 몸이 그렇게 출산을 준비하려는 지도 몰랐다.

23일 토요일 새벽 1시쯤. 엄청나게 몰아치는 하복부 통증에 눈이 절로 떠졌다. 그동안 겪었던 강한 생리통 그 이상의 강도에 이거 보통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파도처럼 왔다 파도처럼 사라지는 통증은 10분 간격으로 나를 들었다놨다 했다. 좋았어. 이대로 잘 참다가 아침에 병원에 가야지. 남편은 부랴부랴 미리 싸놓은 병원 가방에 빠진 것은 없는지 정리하고 나는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마치고 병원에 갈 복장까지 입고 가방을 챙겨 다시 침대에 누웠다. 두시쯤 됐을까. 통증은 이제 점점 간격을 좁혀오고 있었다. 출산 병원은 집에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곳을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 우리 부부는 1안으로 택시, 2안으로 지인 찬스, 3안으로 U-Bahn 교통수단을 이용하자고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하! 3안이라니. 대중교통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무지하고 황당한 아이디어인지.

통증 간격이 꽤 규칙적이고 또 8분, 7분, 6분 간격으로 점점 좁혀지자 겁이 나기 시작했따. 아니 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무서웠다. 아니 더 솔직하게, 공포스러웠다. 집에서 출산하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수준의 염려가 아니었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나는 너무 무서웠다. 이대로 아침까지 버티기엔 자신이 없었다.

출산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맙소사. 하필이면 분만실이 다 찼다고 한다. 아침에 다시 전화를 주던지 아니면 다른 병원을 가라고. 어떡하지. 그렇게 한 시간을 침대에서 버티며 기다려봤다. 이제 시간은 새벽 3시 반. 마지막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분만실은 꽉 차있다며 다른 병원을 가라고 한다. 남편은 안내에 따라 Marien Hospital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곳의 분만실은 비어있어 곧장 가기로 했다.

택시를 불렀다. 새벽이었는데도 다행히 어플로 콜택시를 부를 수 있어 근처에 있는 택시기사와 연결이 됐다. 짐을 들고 짐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이 계단을, 이 현관문을 셋이서 들어오겠구나. 진통이 없는 순간에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가 폭풍처럼 진통이 들이닥칠 때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호흡을 가다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활을 걸고 호흡을 하는 동안 나는 몸을 비틀며 남편의 손을 잡았다. 택시기사는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오늘 출산할 것 같아요. 애끓는 내 목소리에 최대한 빨리 가보겠다고, 말없이 라디오를 꺼주셨다.

 


 

병원에 도착해서. 급한건 나뿐이다.

Marien Hospital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던 듯싶다. 곧장 분만실 쪽으로 들어가니 간호사가 나와 악수를 청했다. 대충 통증의 간격과 진통 시작 시간을 말해주고 태동 검사실로 들어갔다. 태동검사는 막달일 때도 상당히 곤욕스럽다. 남산만 한 배를 한쪽으로 기울여 눕고 20-30분 동안 가만히 있다 보면 허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통까지 있다 보니... 저절로 몸이 꽈배기처럼 틀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해야 하지... 이 병원에서 급한 건 나뿐이로구나. 5시 반쯤 됐을까. 드디어 만나게 된 헤바메는 내진을 해보더니 자궁문이 3-4cm쯤 열렸다고 얘기해줬다.

이만하면 좋은 징조였다. 복도에 앉아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헤바메는 사라지고 나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 통증은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간호사를 불러 눕고 싶다고 청하니 우리가 묵게 될 병실로 안내를 해줬다. 병원은 또 왜 이리 넓은지. 한걸음 한걸음 안타깝게 걸음을 내딛으며 병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지루하고 지겨운 진통의 반복이다. 진통 간격이 다가와 몸을 비틀 때면 남편이 내 허리를 쓰러 내려 줬다. 고요한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고통을 참고 있어야 하는 걸까. 정신이 혼미해졌다 또렷해졌다를 수차례 반복했을 무렵, 남편에게 간호사에게 다녀와달라고 시켰다. 여기서 기다리면 누가 오긴 하는 걸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참고 참고 또 참을 뿐..

준비가 되면 분만실로 오라는 얘기를 듣고 걸음을 내디뎌 왔던 복도를 다시 걸어갔다.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고 의료진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내진을 해본 헤바메는 5cm 정도 열린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나는 절망했다. 2시간을 참았는데 겨우 1cm라니!! 헤바메는 목욕을 하고 싶은지 물었고 나는 당장 하겠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출산 전 고통을 참아내는 방법으로 목욕을 많이 한다. 진통을 참는 공식 같은 것이다. 분만실로 바로 통하는 옆 방에는 1인 욕조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차오르는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임신 중에는 이런 분만의 과정을 상상했을 때 '어떻게 헤바메 앞에서 옷을 벗을까. 좀 민망하겠다'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막상 닥쳐보니 진통 앞에서는 부끄러움도 뭐도 없었다. 

물이 차오르고 어디선가 라벤더 향이 났다. 헤바메가 물 안에 풀어준 라벤더 오일 향이다. 진통이 오면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호흡을 했다. 지루한 반복이다. 물속에서는 고통이 한층 나아질까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 만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경감이 되기는 했지만 고통은 여전했으니.. 어떻게든 출산 전까지 시간은 가야만 하니까. 내가 예상하는 시간으로부터 아직 5시간은 남았다.

그렇게 물 속에서 한 시간을 버텼다. 헤바메는 두어 번 들어와 상태를 물었다. 물이 꽤 차가워져 한번 다시 물을 받았다. 나는 말이 없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면서.

물속에서 나와 몸을 닦으며 나는 기대했다. 물에도 있었고 한 시간은 버텼으니 자궁문이 이쯤이면 많이 열렸겠지.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끝나겠지. 시계는 벌써 8시 반이 되었는데 분만실로 들어온 헤바메는 내진을 하지 않았다. 아마 6-7cm 열렸을 거라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돕는 방법들이 있으니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하며 나가버렸다. 아... 어쩌란 말인가. 지금 무통주사를 달라고 해야 할까. 한번 견뎌볼까. 선택은 나에게 맞겨진채로 나는 다시 남편과 단 둘이 분만실에 남겨졌다.

 


 

출산은 결국 셋이서 하는 일이었다. 나와 아기, 그리고 남편이서.

8시 반부터 11시까지는 끊임없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진통과 나, 남편과의 사투의 시간이었다. 남편의 손을 잡으며 분만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가 파도가 몰아치듯 진통이 밀려오면 분만실 의자에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쿠션에 쳐 박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편은 계속해서 양 손으로 허리와 골반을 쓸어내려줬다. 고통이 분산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 유일한 진통제는 남편의 손길이었다.

아래편의 그래프가 진통의 강도를 나타내준다. 10이 맥시멈인데 10과 12를 왔다갔다 한다.

11시쯤 들어와 내진을 해보던 헤바메는 이제 8cm가 열렸다고 했다. 애가 탔다. 왜 이렇게 진행이 더디게만 느껴지는지. 나는 절망했던 것 같다. 헤바메가 진통을 완화시켜주는 웃음 가스라도 써보겠는지 권했고 나는 달라고 곧장 대답했다.

웃음가스는 가스를 들이마시고 내쉴 때 약간 취하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게 해 줬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약간은 흐려지도록 만들어줬다. 나는 속으로, 웃음가스를 이용해서 한 시간 정도 버티면 이제 출산의 후기로 들어가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희미한 듯 선명하게 진통이 오고 가며 내 의식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웃음 가스로 몽롱하게 한 시간 반을 버틴 후 12시 반. 이제 끝나기 만을 바라고 바랐는데... 내진 결과 아직도 변함없이 자궁문은 8cm 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헤바메의 말은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당장 가스를 벗어던지고 다시 진통을 날 것으로 맞이했다. 이제는 강도도 주기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고통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무통주사를 맞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무통주사를 왜 맞지 않았는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지나치게 용감했던 것 같다.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무식했다고 해야할까. 나는 무식하게 고통을 참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고 처연하고 처절하게 남편의 손길만을 의지하며 출산의 끝을 향해 아주 느릿느릿한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유도분만, 결국 흡착기를 써서...

헤바메는 내 경과가 느려서 Einleitung을 하겠다고 했다. 유도분만을 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이거나 자세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차라리 무릎을 꿇는 자세가 누워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데.... 팔에 옥시토신이 연결되었다. 헤바메의 권유에 따라 나는 분만 의자 위에서 절반쯤 무릎을 꿇고 뒤를 바라보았다.

유도된 진통은 내가 그간 감내해오던 자연진통에서 족히 몇 배가 되는, 강력한 세기였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나는 절규했다. 내가 뒤를 보고 있는 사이, 다시 말하면 혼이 다 빠지고 있는 사이, 헤바메는 의사를 불러 아기와 자궁문을 막고 있는 막도 터뜨리고 내진도 하고 힘을 주라고 얘기했던 것도 같다. 어느샌가 급하게 의료진이 왔다 갔다 하며 내게 자기소개를 하고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부터 2시간 정도 되는 시간은 내 기억에서 가장 흐린 부분이다. 아마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으며 처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힘을 줘도, 아무리 간호사가 거의 다 왔다며 더 힘을 주라고 소리를 질러도, 아기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새벽부터 줄곧 깨어 있었기 때문에 매우 졸렸고 먹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힘이 없었다. 아기는 나와야 했지만 나는 힘이 없었고 절망했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다. 더 이상 남편의 손을 잡을 힘도 없었다. 남편은 의식을 잃어가는 나를 보고 의사에게 제왕절개를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의사는 이대로 하면 된다고 잘하고 있다며 거절했다. 나는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규칙적으로 나를 깨우는 진통에 소리를 지르며 힘을 줬다가 다시 사경을 헤매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아기는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끔찍하고 괴로운 2시간의 터널을 지나며 마침내 나는 아기를 낳았다. 내 배를 누르는 간호사의 도움과 아기의 머리를 흡입하는 흡착기의 도움을 받아, 희망이는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았다. 

너도 얼마나 힘들었니..

마지막 흡착기를 넣어 빼내기를 시도했을 때 생살을 째는 고통이 너무나도 날카로워서 절규했다. 나는 이게 도대체 뭔가 하고 마지막 힘을 내어 허리를 세워 밑부분을 바라보았는데 검은색 머리통이 내 밑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안도했다. 이제 되었구나. 이제 끝났구나. 아기는 아주 짧은 순간에 산도를 통과해 내 가슴 위에 올려졌다. 아주 따뜻하고... 미끌미끌했다.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기분은... 지금에 와서도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작고, 따뜻하고, 조그맣게 숨을 쉬는 생명체가 벌거숭이 모습으로 내게 왔다. 나는 너무 기뻐서, 감격스러워서 울고 아기는 세상이 낯설어 울었다. 울고 있는 모녀에게 남편은 손을 뻗어 기도해주었다. 우리 셋은 드디어 한 가족이 됐다.

아기와 처음 포옹을 한 채로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후처치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처치는 그 나름대로 고통이 극심해서 아기를 남편에게 주고도 나는 다시 진통 완화를 위해 웃음가스를 흡입해야 했다. 아무런 진통제도 없이 생살을 찢고 꿰매고 자궁이 헤집어지는 느낌은 불쾌하고 또 아팠다. 아주 오랫동안 두 다리를 벌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몹시 저리고 밑이 아팠던 것 같다. 한 시간이 넘게 나는 또 절반은 기절한 채로 죽은 듯이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후처치까지 모두 끝나고 분만실 옆 작은 공간에서 남편과 나는 희망이 와 함께 처음으로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는 과정이 퍽이나 피곤했던지 한 번을 깨지도 않고 곤히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뱃속에서 가지고 나온 아기의 연한 털이 참 보드라워 팔 언저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아기는 따뜻했다. 나는 몇 번이고 아기의 이름을 불러가며 아낌없는 축복과 환영의 인사를 속삭였다.

두어 시간이 넘도록 그렇게 약간은 방치되어 있다가 이윽고 간호사가 들어와 우리를 병실로 안내해줬다. 시간은 벌써 저녁 7시쯤 되어가는데 먹은 것은 없어 배가 무척 고팠다.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니 빵 몇 조각과 치즈, 햄과 과일이 배달됐다. 버터를 바른 빵을 한 조각 베어 물고 씹어 넘기려고 시도해봤지만 결국 한입만 물고는 모두 그대로 두었다. 입맛을 모두 잃었다. 아기는 처치실 같은 곳에서 깨끗한 옷을 입고 병실로 다시 돌아왔다. 아기 머리엔 아직도 피딱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먹을 수 있는건 겨우 오렌지와 바나나...

 


 

출산 후 곧바로 이어지는 모유수유 전쟁

자고있는 아이를 깨워 수유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매우 곤혹스럽고 당황스럽게도 나는 출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유수유라는 것을 시도해야 했다. 헤바메는 우리 병실에 들어와 매 3시간 간격으로 한쪽 가슴당 20분씩, 총 40분간 가슴을 물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며 자세를 잡아주고는 총총이 사라졌다. 출산 후 간호사에게 들은 얘기인데 나는 유난히 지혈이 되지 않아 2L의 피를 흘렸다고 들었다. 게다가 상당한 회음부 손상까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몸에 먹은 것 하나 없는 빈 속으로 수유를 시작하자니... 상체를 세워 앉자니 밑이 너무나도 아팠고 몸속에 피는 모자라 머리는 핑핑 돌았다.

이 출산 후기는 숨 쉴 틈도 없이 곧장 모유수유 전쟁으로 이어진다. 회복되지 않은 몸에 텅 빈 젖, 물리고 또 물려도 득달같이 더 내놓으라는 아이와 줄 것이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 출산 후 10일 째 되는 날인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Willkommen mein Baby, 하니야. :)

천사같이 예쁜 아기는 어쩜 매 순간 사랑스러워 우리 부부의 마음을 쥐락펴락 한다. 아기가 짓는 표정, 동작 하나하나가 예쁘고 또 경이롭다. 아기의 얼굴에서 우리의 모습과 닮은 점을 찾아내며 이 신비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기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처절히 깨닫고 있다. 기저귀를 가는 일이며 수유를 하는 일이며 아기를 닦고 씻기는 일이며... 그저 요령 없이 온몸으로 부딪힐 뿐이다.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막연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우리도 결국에는 익숙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감내할 것이다. 힘들 때 서로 다독거리면서 이 작은 우주의 손을 잡고.. 2019년 3월 23일. 내 삶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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