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생후 6주까지의 기록

생후 +23일

요즘 하니는 자주 깨고 자주 칭얼거린다. 잘 먹였다 싶어서 침대에 눕혀놓으면 금방 못 가서 웽- 하고 울어버린다. 그러면 다시 들어 안고 어르고 달래다가 아기가 잠에 들면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내려놓는데 아기는 어떻게 아는지 금방 깨버린다. 아무래도 나와 안겨있을 땐 따뜻하다가 혼자 누우면 열이 식어버려 그렇게도 빨리 알아차리는지 모르겠다. 별 수 없이 다시 안아 달랜다. '엄마가 미안해' 이 말은 최대한 안 해보려고 했는데 자꾸 입 안에서 맴돈다.

아무래도 분유를 끊고 모유로만 먹이려니 아기가 빨리 배고파하는 것 같다. 요 며칠 전부터 90% 모유만 먹이는 중이다. 직접 가슴으로 20분을 물리고 유축해두었던 모유 20-30ml를 먹인다. 분유를 먹였을 때는 잠도 깊게 자고 다음 수유까지 3시간에서 3시간 반 간격으로 굉장히 길었는데 지금은 먹는 양도 적어지고 배도 빨리 꺼지는지 아기는 수유가 끝나도 짜증이 심하다. 겨우 잠이 들면 작은 소음에도 금방 깬다. 정말이지 극진히 모셔야 할 대상이다.

분유는 한번 보충할 때 40ml 정도 먹인다. 유축해 놓은 게 없을 때 하루 한 둰 정도 대체해준다. 자꾸자꾸 분유를 먹이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분유를 먹으면 잠도 잘 자고 체중도 잘 느는데... 빈약간 가슴을 물려 서로 괴로우느니 분유를 먹일까 싶다가도 기회가 있을 때 노력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티는 중이다.

직수를 하는데 하니가 거의 잔다. 5분도 못되어 빨다가 자길래 침대에 눕혔다. 눕히자마자 잠에서 또 깨어 수유하는 소파로 데려왔다. 이렇게 왔다 갔다를 4번 반복하고 직전에 유축해뒀던 젖 20ml를 먹였다. 남편이 하니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동안 나는 다시 20분간 유축을 했다. 놀랍게도 20분간 유축한 양이 5ml도 안 되어 보인다. 아기가 직수를 할 때 힘 있게 빨아먹은 것도 아닌데... 젖이 찰 겨를이 없다. 마음이 약해져 나는 분유를 또 주었다.

 

+32일

하니가 태어나고 내가 엄마라는 존재가 된지 32일이 지났다.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온 순간부터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아기 젖 먹이는 일이었는데, 최근 2주간 분유량을 줄이고 가능한 모유로만 먹이면서 서로 차차 적응하는 중이다. 하지만 알다가도 모를 아기의 반응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빨간불이 켜졌다가 초록불이 켜졌다가 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 젖을 먹다가 아기가 갑자기 빽- 하고 울면서 몸부림을 칠 때가 있다. 분명히 배가 고파서 물렸는데도 악을 쓰고 씨름을 하며 운다. 여러 모습을 관찰해본 결과 트림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이런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부분은) 젖이 너무 안 나와서 운다. 어떤 날은 모유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용을 쓰고 울기도 한다.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후에 가장 큰 우울함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건 이런 생각들이었다. 왜 나는 아기가 먹을 만큼의 젖도 나오지 않는 걸까. 산후조리가 잘못됐을까. 내가 잘 못 먹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자기 연민에 빠져버린다. 혹은 이런 생각들. 분유를 주면서 '이 애가 이제 내 젖을 거부하고 빨기 쉬운 분유만 먹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들. 이제 어느정도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기가 젖을 먹고도 배가 고파하면 일단 먹이자는 생각을 가지니 훗날이야 어찌 됐든 마음은 가벼워졌다. 지금 배고픈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성공하겠다고 무작정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음이 편해지니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

처음엔 아기가 젖 대신 젖병을 너무 맛나게, 단숨에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배신감이 차올랐다. 아빠 품에 안겨 꿀꺽꿀꺽 분유를 잘 삼키는 아기를 보고 배신자라며 우스갯소리로 흘려 이야기 한 적도 많다. 덕분에 남편은 분유를 줄 때마다 내 눈치를 본다. '엄마 젖이 더 맛있지~ 이거 먹고 엄마 젖 더 많이 먹을 거지 하니야~'라며 내 마음을 안심시키는 말을 많이 해주는 고마운 남편이다.

아기는 살기 위해 먹는게 당연한데도 우울감이 마음에 들면 예쁜 아기도 미워 보인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기인데도. 나는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로 했다. 젖이 잘 안 도는 거야 내 탓이 아니고 아기는 먹어야 하니 마음을 편하게 갖자고. 마음이 편해지니 아기도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 아기가 예뻐 보이니 젖도 잘 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37일

하니가 주말 내내 잠만 자는 것 같더니 살이 무럭무럭 쪘다. 오늘 헤바메가 방문해서 체중을 잴 때 아기가 조금이라도 살이 오르면 좋겠다 싶었는데 예상 외로 수치가 꽤 높게 나왔다. 지난 방문 대비 250g이나 쪘다. 그게 뭐 별거인가 싶을 수 있지만 내게는 의미 있는 숫자이다. 거의 80-90% 모유만 먹고 찐 살이니까. 나는 너무 기뻐서 표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헤바메는 이제 모유만 먹이는 시도를 해봐도 되겠다고 한다. 이제 유축도, 분유도 미뤄두고 직수만 해보는 거다.

새벽에 일어나는 건 정말 힘들다. 아기는 엄마 젖을 빠는게 너무 힘들어 자주 잠에 빠지는데, 그럴 때마다 아기랑 같이 잠들고 싶던 순간이 참 많았다. 하지만 나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아기를 깨우고 기저귀를 갈며 그 텀의 수유를 어떻게는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래야 남은 젖을 유축기로 뺄 수 있으니까. 유축 20분을 하면 그 새벽에 병도 씻어야 하고 지난번 텀에 유축해놓은 젖도 덥혀 다시 아기를 먹여야 한다. 먹이고 나면 트림도 시켜야 한다. 이 모든 걸 새벽에 1-2시간 자고 일어난 정신으로 하기에는... 정말 체력적인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남편은 가능하면 새벽에 깨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두명 다 잠을 못 자버리면 둘 다 낮시간에 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편은 2주 전부터 다시 알바를 시작했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새벽엔 독박 육아를 나름 경험하는 중인데 정말 아이고아이고 곡 소리가 절로 나온다. 2시간 자고 일어났다가 1시간 반 깨어 수유하고 또 1시간 잤다 일어나 똑같은 걸 반복한다. 

잠도 잘 못 자고 꼼짝없이 아이에게 메여있는 몸이 되었지만 가끔 이 모든 걸 잊제 할 만큼 강력하게 아기가 좋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 속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신비로움을 느낀다. 요즘은 아기가 나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대화를 하면서(물론 나 혼자 일방적인 읊조림이지만) 아기가 꽤 푸근하면서도 안정적인 미소를, 아주 옅은 수준이지만 내게 지어주는 것을 볼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본능적인 행복감이 솟아오른다.

 

+40일

직수로만 아기를 먹인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첫 번째 날은 아기도 직수로만 먹는 게 불만족스러웠는지 자주 칭얼대고 자주 가슴을 찾았다. 둘째 날은 전날의 영향인지 가슴이 단단하게 차올라 꿀꺽꿀꺽 먹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이렇게만 되어주면 참 좋을 텐데. 셋째 날인 오늘은 가슴이 차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기는 잘 먹을 때도 있고 대충 먹을 때도 있다. 이렇게 수유를 하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기가 충분히 먹고 있긴 한지, 내가 혹시 아기를 굶기고 있는 건 아닌지, 갸우뚱거리면서도 일단 먹일 때가 되면 물리고 있다. 헤바메가 방문하면 이전에 비해 얼마나 살이 쪘는지 알게 될 것이다.

 

+44일

쌕쌕거리며 자고 있는 아기를 가슴 위에 올려두고 나는 수유쿠션을 받침 삼아 노트에 글을 적는 중이다. 아기는 침대에 누워 잘 때보다 안겨 있을 때 훨씬 잘 잔다. 처음에는 침대에만 내려놓으면 깨서 우는 아기 때문에 혹시 침대 기울기가 머리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건 아닌지 (진지하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기울어진 것이 확실하다며 휴대폰 어플로 기울기를 측정해보았지만.... 기울기는 0이었다.

손을 타면 어쩌나, 안겨만 자면 어쩌나 염려할 겨를도 없이 일단 재우려면 많이 안아주는 수 밖에 없다. 잠은 침대에서 자게 해야지, 이런 생각은 임신 때나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기가 내 품에서라도 일단 자주는 거에 감사하고 있달까. 

오늘은 감사하게도 하니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잘 자주고 있다. 그래서 딴 짓 할 여유가 생겨 펜을 들었다. 아기가 온종일 먹구름인 날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오후 3-4시까지 한두 시간의 쉴 틈 없이 앵앵거리며 울 때는 정신이 다 몽롱해진다. 거의 1시간마다 젖을 물릴 때도 있다. 아기를 업었다가 내려놓았다가 업고 방을 서성거렸다가 난리를 친다. 이런 먹구름 날에는 점심밥도 아기를 안고 서서 급하게 먹는다.

일주일째 유축 없이 직수를 해보고 있는 중이다. 중간점검 차 헤바메가 방문했을 때 몸무게는 60g 정도 올라 있었다. 그렇게 높지 않은 수치지만 혹시 살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우려는 접어두었다. 오늘 헤바메가 방문할 텐데 몸무게를 보면 계속 직수를 해도 될지 다시 유축이나 분유를 먹여야 할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슴 위에 누워 자고 있는 아이에게서 희미한 아기 냄새가 난다. 한달 동안은 뽀뽀하는 것도 아까워서 못했다. 6주 차부터인가 아기의 머리, 이마 같은 곳에 쪽 하고 뽀뽀를 해보았다. 그러다 볼에 아주 조심스럽게 뽀뽀를 해봤는데 보드라운 아기 볼의 감촉이 황홀해서 몇 번이고 반복했다가 남편에게 핀잔을 받았다. 자기도 아까워서 못한다나. 사실 물고 빨고 싶은 마음은 큰데 아기한테 안 좋을까 봐 심히 자제 중이다.

 

남편을 쏙 빼닮은 예쁜 딸 :)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