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얼한 독일 병원 출산후기

티셔츠를 입고 아기를 낳았다

진통이 들이닥치면 이성이 마비된다. 이때를 대비해서 산전 교실도 다니고 지인들의 출산 후기를 찾아 듣고 했지만, 막상 나의 타이밍이 오니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출산 가방을 미리 싸놓은 것만은 천만다행이었다. 새벽 1시. 첫 진통을 느끼며 샤워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을 때 나는 알았어야 했다. 지금 입은 옷 그대로 아기를 받을 거라는 걸.

진통이 시작된 후 두 시간 쯤 흐르고 나니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산전 교실 Vorbereitungskurs을 다닐 때 헤바메는 이렇게 얘기했다.

"어차피 병원에 가도 기다려야 하는 건 똑같아요. 초산의 경우 아기는 생각했던 것처럼 빨리 나오는 게 아니랍니다. 집에서 기다리세요. 욕조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베이킹도 하고, 티비도 보고. 맥주나 와인 한 잔 정도 마시면서 몸을 이완시키세요. 병원보다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가는 것을 추천해요."

목욕까지는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베이킹..? 티비...? 맥주?? 와인???

그중 어느 것도 하지 못한 채로 침대에 누워 끙끙 앓기만 하던 나는 다급히 남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가능한 오래 참았다가 병원에 가리라 다짐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 가고 무섭고 두렵고 공포에 질린 나는 서둘러 병원을 가야 했다.

 

제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태동검사를 시작했다. 태동검사는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남산만 한 배를 한쪽으로 기울여 눕고 20-30분 동안 가만히 있으라니. 거기에 진통까지 더해지면... 꽈배기처럼 몸이 뒤틀어진다.

이 와중에 간호사는 병원 등록 서류라며 종이 한 뭉텡이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남편은 독일어를 하지 못했다. 엉성하게 누워있는 자세로 나는 서류에 이름을 기입하고 아기의 이름을 쓰고 동의서를 작성했다. 개인실을 쓸 건지 다인실을 쓸 건지도 정하라고 했다. 개인실은 보험으로 얼만큼 커버가 되고 다인실은 무료라고 했다.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태동 검사실에서 드디어 만나게 된 헤바메는 내진을 해보더니 자궁문이 3-4cm쯤 열렸다고 했다. 그때는 이미 진통이 시작된지 4시간 반쯤 흘렀을 때였다. 복도에 앉아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헤바메는 사라졌다. 새벽 5시 반. 병원 복도는 텅텅 비어있고 딱딱한 의자에 반쯤 걸터앉은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쳐야 했다. 이거 정말 맞아? 곧 출산할 임산부를 복도에 방치해놓고 다 가버려도 되는 거야?

나는 방치되어 있다시피 복도에 앉아 있다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엉금엉금 걸어서 병실로 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어떻게든 편하게 지내고 싶어 개인실을 신청했다. 둘다 졸리고 피곤해서 너무 지쳐있었다.

병실에서는 각자 베드에 누워있다가 진통이 와서 신음하기 시작하면 남편이 일어나 내 허리를 쓸어내어주었다. 벌써 시간은 아침 7시가 되었다. 이러다 혼절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남편의 부축을 받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분만실이었다.

이런 느낌의 분만실이었다. (사진 출처: https://www.niels-stensen-kliniken.de/marienhospital-osnabrueck/medizin/kliniken/geburtshilfe-und-frauenheilkunde/rund-um-die-geburt/kreisssaalfuehrung-und-kurse.html)

넓은 분만실의 중앙에는 낯선 분만 의자와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있는 천이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천과는 퍽이나 어울리지 않는 의료 기기들이 분만 의자 주변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여기서 낳는구나. 아기가 나와야지만 이 공간을 나갈 수 있겠구나.

순간 뭐라도 가져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든 짐을 병실에 두고 달랑 몸만 분만실로 왔던 것이다. 먹을 것도 편한 신발도 편한 옷도 모두 두고.... 

 

긴 티셔츠를 입고 와야 했다

출산까지 진행은 더딘 편이었다. 순산을 꿈꿨지만 결국 난산이었다. 분만실로 이어져있는 개인 욕조에서 한 시간 동안 몸을 담그며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봤지만 큰 도움은 받지 못했다. 남편이 헤바메를 다시 불러주었고 헤바메가 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고 대충 옷을 주워 입었다. 헤바메는 이제 아기를 낳아야 하니까 바지는 입지 말라고 했다. 

분만실로 통하는 개인 욕조는 이런 느낌으로 생겼다. (사진 출처: https://www.marienkrankenhaus.org/kliniken-experten/kliniken/geburtshilfe-perinatalzentrum/wir-stellen-uns-vor/raeume-und-ausstattung/)

헤바메는 기다란 천 기저귀를 덧댄 흰색 망사 팬티(?)를 건네주었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출산이 임박하면 가위로 잘라버리면 그만일 이건 팬티라고도 하기도 난감한... 그냥 그물이었다. 

헤바메의 부축을 받으며 한 다리씩 힘겹게 들어 올려 그물 사이로 다리를 넣었을 때 나는 부끄러움을 포기했다. 헤바메는 잘 버텨보라며 나가 버렸고 그물 팬티를 주워 입은 나는 마치 스모선수 같은 차림이었다.

위에는 내가 집에서 입고 온 반팔 티셔츠와 카디건, 아래는 천기저귀가 다 보이는 그물 팬티..... 진통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음에도 그 차림으로 있기엔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분만실 의자에 걸쳐있던 큰 타월을 허리춤에 둘렀다. 

신발은 또 하필이면 운동화다. 병원 올 때 나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아파 죽겠는데 운동화 신을 겨를이 어디 있나. 슬리퍼는 풀지도 않은 캐리어 안에 있고 그 캐리어는 병실에 있다. 나는 신발 신기를 포기하고 맨발로 남편의 양손을 잡고 분만실 안을 걸어 다녔다.  

8시부터 11시까지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진통과 나, 남편과의 사투의 시간이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분만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가 파도가 몰아치듯 진통이 밀려오면 분만실 의자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쿠션에 박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편은 계속해서 양 손으로 허리와 골반을 쓸어내려줬다. 고통이 분산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진통제는 없었다. 

 

웃음 가스라니... 상상도 못해봤다. (사진출처: https://www.marienhospital-stuttgart.de/fachkliniken/gynaekologie-und-geburtshilfe/geburtshilfe/schmerzlindernde-verfahren/)

11시쯤 들어와 내진을 해본 헤바메는 이제 자궁문이 8cm쯤 열렸다고 했다. 헤바메는 고통 완화를 위해 웃음 가스를 써보겠는지 권했고 나는 달라고 곧장 대답했다. 웃음가스는 가스를 들이마시고 내쉴 때 약간 취하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게 해 줬다. 고통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약간은 흐려지도록 만들어줬다. 희미한 듯 선명하게 진통이 오고 가며 내 의식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14시간 진통 끝에 내 품에 올려진 아기

자궁문이 8cm에서 진전이 되지 않자 헤바메는 유도분만을 하겠다고 했다. 바쁘게 간호사가 왔다 갔다 하더니 팔에 옥시토신이 연결됐다. 그물 팬티는 잘려 나갔고 나의 밑은 훤히 드러났다. 나는 분만 의자 위에서 무릎을 반 접어 뒤를 바라보고 의자의 머리를 붙잡았다. 

유도된 진통은 내가 그간 수 시간 참아오던 자연진통에서 족히 몇 배가 되는 강력한 세기였다. 나는 절규했다. 내가 혼이 다 빠져버리고 있는 사이에 헤바메는 의사를 불러 아기와 자궁문을 막고 있는 막도 터뜨리고 내진도 하고 힘을 주라고 얘기를 했던 것도 같다. 진통의 간격이 점점 촘촘하게 몰아쳤다. 진통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의자 머리를 붙잡고 죽을 듯이 힘을 줬다. 나는 그야말로 죽는 줄 알았다. 

Fast, fast, fast!!!!!! (거의 다 왔어요!!!)

여기서부터 2시간 정도 되는 시간은 내 기억에서 가장 흐린 부분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절망적이었으며 미치도록 처절했기 때문에 내 머리가 기억을 지워버린 듯하다. 하지만 끔찍하고 괴로운 2시간의 터널을 지나고 마침내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내 배를 누르는 간호사의 도움과 아기의 머리를 흡입하는 흡착기의 도움을 받아, 하니는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았다.

집에서 입고온 옷 그대로 아기를 안았다. 옷이 피범벅이 되었지만 상관 없었다.

하니는 미끄덩하고 나와 곧바로 내 가슴 위로 올려졌다. 입고 있던 티셔츠는 가슴 위까지 접어 올렸다가 남편의 도움으로 드디어 상의를 탈의했다. 아주 따뜻하고 미끌미끌한 아기가 내 가슴 위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작고, 따뜻하고, 조그맣게 숨을 쉬는 생명체가 벌거숭이 모습으로 내게 왔다. 나는 너무 기뻐 감격스러워서 울고 아기는 세상이 낯설어 울었다. 울고 있는 우리 모녀에게 남편은 손을 뻗어 기도해주었다. 아주 오랜 기다림과 산고 끝에. 우리는 드디어 얼굴을 마주했다. 

 

출산 그 이후...

후처치까지 모두 끝나고 분만실 바로 옆 공간에서 남편과 나는 아기와 함께 처음으로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는 과정이 퍽이나 피곤했던지 한 번을 깨지 않고 곤히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뱃속에서 가지고 나온 아기의 연한 털이 참으로 보드라워 팔 언저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아기는 포근하고 따뜻했다. 

출산 직후 받은 식판. 겨우 오렌지와 바나나를 먹을 수 있었다.

분만실에 두어 시간 더 머물다가 마침내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니 빵 몇 조각과 치즈, 햄과 과일이 병실로 배달됐다. 출산 직후에 먹는 빵이라... 일단은 버터를 발라 한 조각을 베어 물어봤지만 씹어 넘기려고 해도 넘어가질 않았다. 입 안과 목이 까슬까슬했다. 결국 귤 하나를 까먹고 모두 물려버렸다. 따뜻한 국 생각이 절로 났다.

하니는 신생아실에서 깨끗한 옷을 입고 병실로 다시 돌아왔다. 독일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도 샤워를 시키지 않는지 머리엔 아직도 피딱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기 젖을 먹여야 한다며 수유 자세를 봐주기 위해 헤바메가 병실로 들어왔다. 한쪽 가슴당 20분씩, 총 40분간 젖을 물리기를 3시간마다 하라고 했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먹은 것은 없지, 몸은 만신창이지. 빈 속으로 수유를 하자니, 상체를 세워 앉자니 밑이 너무나도 아팠다. 자 이제 시작이다. 모유수유 전쟁.

 

독일 병원에서 출산할 때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출산하기 편한 옷::: 이런 옷이 세상 어디 있겠냐만은......... 뒷 말은 생략한다. (참고로 병원 가운을 입고 출산할 수 있는 병원도 있으므로 미리 알아보는 편이 좋겠다.) 가운을 주지 않는 병원이라면 분만실에 들어갈 때 엉덩이를 덮는 긴 티셔츠를 입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실내화를 꼭 가져가는게 좋겠다. 

목욕가운::: 참고로 망사 팬티(?)는 출산 후에 다시 입었다. 출산 후 나오는 오로는 생리와 비교할 수 없는 양인만큼 병원에서 제공하는 천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인이 빌려주어 Bademantel(목욕가운)을 출산 가방에 싸가지고 왔는데 위는 수유 나시, 아래는 망사팬티를 입은 채로 목욕가운을 입고 병실에서 먹고 자며 정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출산 직후에는 아무래도 바지를 입기 어렵다. 아프기도 하고 수시로 간호사들이 오로가 잘 배출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독일 여자들도 대부분 목욕가운을 입고 돌아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먹을 것::: 먹을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출산이 어떤 속도로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배우자가 먹을 것 혹은 본인이 진통 중에 먹을 것이 필요하다. 물은 병원에서 제공해주지만 음료수 같은 게 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진통 중에는 제정신이 아니라 뭔가를 먹기가 굉장히 힘들지만 기력을 보충해줄 필요는 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바나나도 좋을 것 같다.

각종 서류::: 자신과 배우자의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 등등 공식 서류에 아포스티유와 번역 공증을 미리 받아놓고 그 모든 서류를 병원에 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태어나는 직후 바로 병원에서 출생 신고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안 하면 번거로워진다.) 아기 이름도 지어 가야 한다. 

미역국::: 병원에서 물론 식사를 제공한다. 하지만 내가 있었던 Marien Hospital의 경우 아침과 저녁은 차가운 빵과 치즈, 햄이 있는 뷔페식이었고 점심만 따뜻한 음식이 병실로 배달됐다. 특히 저녁에 따뜻한 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퇴원할 때 입을 엄마옷과 아기 옷:: 아기가 입원하는 동안에는 병원에서 아기 옷을 입혀준다. 퇴원할 때 필요한 한 벌만 준비하면 된다.

출산하고 바로 다음날 점심식사. 맛있다고 먹고 있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 것이 없어도 아기는 세상에 나온다. 아기를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 몰라도 괜찮다. 쩔쩔매면서 아기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는 날들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결국 그것도 해낼 것이다. 뱃속에 열 달 동안 꽁꽁 숨어 있다가 드디어 세상에 얼굴을 보인 아기와의 소중한 첫 만남, 그 아름다운 순간만 집으로 가져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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