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138] 창고정리를 마치고, 공책을 샀다

그가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물건들은 수줍은 듯이 정돈 되었다.
상남자의 거칠지만 다정스러운 손짓에
먼지쌓인 익명의 물건들은
고결한 신부가 되어 제자리로 돌아갔다.
-'창고정리'


모양도 크기도 비슷한 수많은 공책들이 가지런히 진열대에 놓여있다. 하나씩 손에 들어 펼쳐보았다. 줄 간격이 좁은 것과 넓은 것, 흰 종이, 노란 종이, 초록색 종이, 얇은 종이, 두꺼운 종이, 평범한 종이, 키가 작은 것, 그저그런 것, 큰 것들 사이로 내 손이 바쁘게 지나다닌다. 빠르고 힘차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내면서 공책이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지는 상상을 한다. 여기엔 이런 내용을 적을 수 있겠지, 이 공책은 단어 적는데 딱이겠어. 너덜너덜 해어질 정도로 빼곡히 쓴 공책을 상상하는 이런 즐거움. 마침내 선택받은 공책들을 들고 비장하게 카운터로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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