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 00:29 2016년 캄보디아
좀 추워졌다. 아침 저녁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제법 서늘하다. 이불을 덮고 있는 감촉이 고슬고슬. 선풍기까지 틀어놓고 있자니 더 추워지는 것 같아 이제는 잘 때 켜지 않는다. 늘 찬물 고정이었던 샤워도 이젠 더운물로 바꿨다. 지금 우리는 초가을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한낮이 이렇게 서늘하진 않다. 살을 새까맣게 태워버릴 듯 맹열하게 태양이 내리쬔다. 왠만해선 한낮에 밖에 나와있진 않은데, 오늘은 병원에 가느라 점심쯤 모또를 탔다. 10분쯤 흘렀을까. 반바지 반팔을 입고 나온 것이 후회가 될 정도로 햇볕이 강렬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이렇게 더운데도 긴팔, 긴바지 심지어는 후드티나 자켓을 입고 다니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된다. 추워서일 수도 있고 너무 더워서 일 수도 있다. 벌써 가을이 온 것은 아니겠..
2016. 6. 25. 22:08 2016년 캄보디아
*지친 6월. 몸도 마음도 쉽지가 않다.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누군가 나에게 휴식시간에 무엇을 하냐고 물어봤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는 막연하게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친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고. 그것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었을까. 현실의 나는 이렇게 누워 천장을 보는 것이 전부인데. 아니면 아무 책이나 들고 머리를 들이밀거나.주말이라, 이렇게나마 발뻗고 쉴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불편한 옷, 불편한 이동, 불편한 식사, 불편한 휴식에서 벗어나 메여있는 것 없이 편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편한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몸과 내 생각의 권리는 지켜주어야 한다고 본다. 나에게는 쉴 권리가 있다. 편할 권리. **소..
2016. 6. 20. 23:40 2016년 캄보디아
비가 창문을 때린다. 이렇게 3시간 넘게 내리 쏟아지는 것도 처음겪는 일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개구리가 울고 있으려나 귀를 기울여보지만 나올 때가 아닌지 빗소리만 가득하다.몇도 쯤 됐을까. 습관적으로 체크하는 것 중 하나다. 지금 나는 몇도의 온도에도 선풍기와 바깥 바람 한 점 없이 버티고 있는 걸까. 30도? 32도? 이상하게 땀은 나지 않는다. 사람의 적응력이란게 대단하다. 40도가 넘는 더위, 땀방울을 내리쏟게 만드는 무서운 폭염에도 그러려니 하는 적응. 추위는 더위보다 견디기 힘들까, 궁금하다.오늘은 개가 울지 않을 것 같다. 침대맡에 누우면 도미노 넘어지듯 울어대는 개들의 합창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왈왈짖는 울음이 아니다. 구슬프고 처량한 울음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보고 울..
2016. 6. 20. 16:22 2016년 캄보디아
여행을 하면 자기를 더 많이 알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보고싶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나의 한계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NGO 업무에 대단한 비전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였지만 나는 이 일을 할 때 보람을 잘 못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훌륭하고 멋진 일이지만 나에게는 열정이 좀처럼 생기질 않는다. 전에는 몰랐지만 하면서 알게 된 느낌이다.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였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하루도 쉴틈 없이 매일을 보냈던 20대 초반과는 정반대다.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책에 파묻혀있는 시간이 있어야 편안하다. 모르는 사람 투성이인 공간에서는 지치고 피로하..
2016. 6. 18. 23:20 2016년 캄보디아
드디어 자전거가 우리 품에 안겼다. 프놈펜 자이언트 매장이 한달간 50% 세일을 하는데, 그 바람을 타고 우리도 구입하게 됐다. 농장에서 집까지 35km넘게 떨어져있는 박군은 튼튼한 MTB로, 7km정도 거리인 나는 잘빠진 로드 바이크로 샀다. 박군은 자이언트 타론Talon 27.5 4. 나는 자이언트 에스케이프Escape 1이다. 원래는 좀더 저렴한 것을 알아보려고 하다가 오빠도 나도 매일 장거리 출퇴근에 사용할 거 이왕이면 괜찮은 걸로 사자 해서 비상금을 탈탈 털었다. 자전거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부속품도 상당하다. 가방을 걸어야하니까 뒷자리 렉($25), 렉에 걸 방수가방($53), 물튀기지 말라고 물받이($25), 속도 측정해야하니까 속도계($13), 중간중간 물 마셔야 하니까 보틀 스탠드($5..
2016. 6. 18. 00:40 좋아서 읽는 책
p.104송장이 되어도 친정에는 안 간다는 딸의 고집을 꺾을 수도 없고 해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놓는데 사립문에 몸을 가누고 돌아보며 돌아보며 가는 어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딸, 야무네는 길이 눈에 보이질 않았다. (....)그것이 지난 가을의 일이었다. 그러고는 소식이 없다. 야무네는 부엌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저녁 죽거리를 하려고 삶은 고구마순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시레기는 벌써 떨어졌고 산나물도 한 보름쯤 지나야... 야무네는 부엌 밖의 하늘을 힐끗 쳐다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부터 내려앉고, 다음엔 딸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번 있는 일이다. 그러고나면 목이 꽉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딸이 죽을 것이란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