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7. 13:09 좋아서 읽는 책
p.235 서서히, 떠날 아침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들고 있다. 떠날 사람 전송 나온 사람 짐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 돌아오는 사람, 산다는 것은 결국 오고 가고, 뱃길이든 육로이든 인생은 길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것인 성싶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저세상도 황천길 저승길이라 하지 않는가, 길이 있기에 시간도 있는 겐가. 탄생은 시간을 가르고 나오는 것, 죽음은 다른 차원의 시간으로 가는 것, 해서 정거장이나 부둣가는 대부분 비애스런 곳이나 아닐는지. 영원한 정착이 없듯 떠남도 영원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멀리 점철된 섬 위로 흰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날으는 갈매기처럼 삶 자체는 정착도 아닌지 모를 일이다. 존재와 길, 그 자체가 애처로운 모순 비극이나 아니었을지.
2016. 6. 18. 00:40 좋아서 읽는 책
p.104송장이 되어도 친정에는 안 간다는 딸의 고집을 꺾을 수도 없고 해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놓는데 사립문에 몸을 가누고 돌아보며 돌아보며 가는 어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딸, 야무네는 길이 눈에 보이질 않았다. (....)그것이 지난 가을의 일이었다. 그러고는 소식이 없다. 야무네는 부엌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저녁 죽거리를 하려고 삶은 고구마순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시레기는 벌써 떨어졌고 산나물도 한 보름쯤 지나야... 야무네는 부엌 밖의 하늘을 힐끗 쳐다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부터 내려앉고, 다음엔 딸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번 있는 일이다. 그러고나면 목이 꽉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딸이 죽을 것이란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지만..
2016. 6. 14. 16:11 좋아서 읽는 책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너는 나의 이 유언을 전국의 학교와 교회에 널리 알리도록 하여라"독립운동가 강우규(1855.7.14~1920.11.29) 선생, 1920년 11월 죽음을 앞두고 대한의 청년들에게 남긴 유언 토지 3부 중 주갑이 모신 어른, 강우규.삼일운동의 수습책으로 해임된 하세가와 총독 대신 사이토가 후임으로 부임하던 날 남대문 역두에서 폭탄을 터뜨린 예순 다섯살의 노인. 나라에 대..
2016. 6. 14. 15:02 좋아서 읽는 책
p.216석이는 지칠 때 봉순이를 생각하고, 쉬어가는 길손이 되어 마음 속에 있는 그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 앉는다. 스물일곱이 되도록 독신을 지킨 것이 봉순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 들어앉은 봉순이라는 안식처, 괴롭고 고되고 서러울 때 침잠하듯 마음속에서 대면하게 되는 봉순의 영상 때문인지 모른다. 욕망이나 소유로는 결코 발전될 수 없는, 그것은 사랑일까. 사랑인지 모른다. p.241자식 기르는 것, 일하는 것만을 보람으로 지내온 충실한 인생에 햇볕은 더없이 따사롭게 비친다.
2016. 5. 23. 18:35 좋아서 읽는 책
p.106 드디어 말아놓았던 지나간 세월은 풀어지고 연못가 그 자리로 돌아온 서희와 봉순이는 한 사내를 의식 밖으로 몰아내 버린다. p.205 기화는 바닥에서 스며든 차가움에 몇 발짝 발을 떼어놓곤 한다. 차츰 기화는 부처님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의 는에는 소복한 서희 뒷모습만 보인다. 금봉채에 진주를 박은 국화잠이 쪽머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유연한 두 어깨, 물결처럼 부드럽게 잡힌 치마의 주름. 그의 아름다움은 그의 권위요 아집이요 숙명이다. 그의 아름다움과 위엄과 집념은 그의 고독이다. 일사불란 독경하고 있는 서희의 모습은 애처롭다. 책에 열중할 때는 책이 부처님일 것이요, 자수에 열중할 때는 바늘이 부처님이었을 것이다. 어짜면 그에게는 신도 인간도 존재치 않았는지 모른다. p.249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