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6. 17:25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14개월 현재의 하니를 키우면서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밥을 준비할 때다. 하니를 맡아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살피며 요리를 차리는 건 쉽지 않다. 대게 점심식사 준비는 11시부터 시작되는데 그때는 하니가 가장 배가 고플 때라 나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하며 나는 하니를 먹이기 위해 식사 준비에 몹시 바쁘다. 그래서 나는 식사를 만들면 3일분을 한 번에 만들어 놓는 편이다. 그러면 하루는 음식 장만하느라 좀 힘들어도 이틀은 장만한 음식을 덥히기만 하면 되니 편하다. 어제는 새로운 점심 메뉴를 만들어야 하는 날이었다. 냉장고 안에 애호박이 있어서 나는 자주 해주는 애호박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애호박 크림 파스타는 만들기가 정말 쉬운데 하니가 잘 먹어주어 우리 집 단골 메뉴다. ..
2020. 5. 26. 18:45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저녁밥을 먹이는 것 부터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하니는 평소 좋아하는 연어가 들어간 밥을 왠일인지 잘 먹지 않았다.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가 두배 이상 들어간다. 하니는 자꾸 손사래를 치고 나는 한 번이라도 먹이기 위해 숟가락을 들이밀고.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하다 밥은 사방으로 튀고. 인내심은 바닥을 들어낸다. 남편이 후반부를 맡아 양치를 시켜주는 동안 나는 부엌으로 숨어 들어가 설거지를 하는 명목으로 한숨을 돌렸다. 정말이지 감정적으로 힘에 부칠 때는 자리를 뜨고만 싶어진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내가 편했던 장소, 내가 편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만 진다. 나는 감정 탈진 상태가 되어 설거지를 하며 부정적인 감정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하니를 재우는 것은 요새 나의 몫이 ..
2020. 4. 8. 03:26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우리 부부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하니가 드디어 첫 돌을 맞이했다. 하니가 세상에 나온 날은 내가 엄마로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기에 딸의 생일은, 그것도 첫 번째로 맞이하는 생일은 내게 누구보다도 큰 의미가 있었다. 1년의 생애 첫 사이클을 돌며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나기까지 큰 탈 없이 지냈다는 것도 감격적일뿐더러 하니의 짧은 생애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첫걸음마!!!)을 목전에 두고 있어 우리 부부에게, 내게 이번 봄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애석하게도 독일은 3월 둘째 주 이후부터 전국적인 외출 자제, 만남 자제를 권고하고 있는 관계로 우리의 모든 사회적 관계도 함께 차단되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고 넘어가긴 싫다. 우리끼리 이 시국에 셀프 돌잔치,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치렀는지 공..
2020. 1. 31. 04:30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남편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빨래하기. 하니는 도무지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9kg에 육박하는 아기를 한쪽 팔에 번쩍 안아들고 화장실에 있는 빨래감을 가져온다. 하니를 부엌 바닥에 내려놓는다. 요즘 하니는 점점 무거워져서 들거나 안고 있기가 힘들어져서 이제 차라리 언제든 바닥에 내려놓고, 바닥을 매일 닦기로 했다. 하니가 부엌 바닥에 앉아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옷가지를 세탁기 안에 쑤셔 넣는다. 문을 닫기 전, 더러워진 하니의 식탁의자보가 떠오른다. 입에 음식물이 있는 채로 벨트를 쪽쪽 빨아대는 바람에 온갖 음식물들로 벨트가 딱딱해졌다. 벨트 풀기가 영 옹삭한데.... 그래도 힘주어 어깨, 허리, 중앙의 각각의 벨트들을 빼서 작은 주머니에 넣고 세탁기 안에 쑤..
2020. 1. 29. 03:17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식사초대를 받아 지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하니에게 이유식을 먹이다가 순간 하니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하니는 몸이 축 늘어지면서 내게 고개를 기대고 어딘가 아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열이 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체온은 정상이었다. 평소에 하니와 다른 모습이었다. 졸릴 때에 하니는 차라리 몸에 힘을 주며 우는 편이다. 그리고 1시간 전쯤 이미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전혀 졸릴만한 타이밍이 아니었다. 하니는 언제고 이렇게 힘없이 고개를 내 품에 푹 기대지 않는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고개를 푹 기댄 채로 고개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리며 손가락을 빨던 하니는 거의 눈을 감은 채로 인상을 쓰며 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다시 활기차게 웃으며 잡고 일..
2020. 1. 14. 06:35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잘 노는 하니가 느닷없이 열이 났다. 콧물이나 기침 같은 감기 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유독 축 쳐져 보였다. 하니가 평소와 다르게 뭔가 더 뜨끈뜨끈했다. 설마... 온도를 재보니 38.8도. 비접촉식 온도계로 이마를 대고 잰 거라 혹시 부정확한 수치일까 싶어 항문 온도로 다시 재보았다. 38.1도.... 숫자 올라가는 속도가 꽤 빨랐다. 간담이 서늘했다. 하니가 태어나고 열이 난 것은 처음이다. 초보 엄마는 심히 당황했다. 뭘 어떻게 해줘야 할까, 바로 약을 줘야 할까 조금 지켜봐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38도 가지고 병원은 안 되겠지. 여긴 독일이니까. 웬만큼 열이 나지 않고선 태연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소아과 의사가 대부분인 이곳은 엄마들에게 악명이 높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