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4. 06:35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잘 노는 하니가 느닷없이 열이 났다. 콧물이나 기침 같은 감기 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유독 축 쳐져 보였다. 하니가 평소와 다르게 뭔가 더 뜨끈뜨끈했다. 설마... 온도를 재보니 38.8도. 비접촉식 온도계로 이마를 대고 잰 거라 혹시 부정확한 수치일까 싶어 항문 온도로 다시 재보았다. 38.1도.... 숫자 올라가는 속도가 꽤 빨랐다. 간담이 서늘했다. 하니가 태어나고 열이 난 것은 처음이다. 초보 엄마는 심히 당황했다. 뭘 어떻게 해줘야 할까, 바로 약을 줘야 할까 조금 지켜봐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38도 가지고 병원은 안 되겠지. 여긴 독일이니까. 웬만큼 열이 나지 않고선 태연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소아과 의사가 대부분인 이곳은 엄마들에게 악명이 높은 곳이다...
2020. 1. 9. 05:36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나도 새로운 시도는 늘 어렵다.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을 찾아보기는 하지만 막상 가기까지는 쉽지가 않다. 6-7개월까지는 쭉 괜찮았다. 하니가 누워있으면 나도 마음 놓고 이것저것 할 수도 있고, 같이 누워있기도 했다. 하지만 하니가 잡고 일어서고 엄청난 에너지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집에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하니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어디든 가야한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로 2주간의 긴 연휴가 끝이 나고 남편은 다시 학교와 알바가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됐다. 고로 나의 독박 육아의 세계가 다시 열린 것이다. 오늘부터는 내 의지로 집 밖을 나서야 한다. 처음엔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자, 어디 독일 엄마들과 독일 아이들 좀 만나러 가볼까, 이렇게 마음먹으면 어쩐지 힘이 빠지고 집 문 밖을 ..
2019. 12. 18. 16:28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2년 3개월이 지나 이제야 날아온 편지 이틀 전쯤 온 편지는 아무렇게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Betriebskosten/Nebenkostenabrechnung. 이름도 긴 이 단어는 번역하면 "관리비/집세 외 잡비 정산". 우리가 이 집에 살기 시작한 것이 2017년 9월부터인데 무려, 2년이 지나서야 2017년 9월, 10월, 11월 이렇게 3개월간의 비용이 정산되어 날아온 것이다. 금액도 터무니없고, 기간도 너무 옛날이라 뭔가 잘못되었겠지, 쓴 사람이 헷갈렸겠지 하고 책상 위에 펼친 채로 둔 편지를 오늘에야 진지하게 읽을 마음이 생겼다. 첫 장부터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거주자의 물 총 사용량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화장실과 주방의 물 계량기 사진을 찍어두었던 것이 ..
2019. 12. 14. 07:47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그것은 (우리 둘 다) 몹시도 몹시도 괴롭고 힘든 것이었다.... 눕혀 놓으면 다시 깨고 자꾸만 말똥말똥 눈을 뜨는 하니가 야속해서 비행기 안 좁은 복도에 서서 나는 울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었다. 하니는 한참 전부터 깨서 다시 잠들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이륙하자마자 하니가 잠을 자 주어 나는 퍽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기내식도 우아하게 먹었다. 내 옆에는 친정엄마와 함께 앉은, 10개월 딸을 데리고 있는 엄마가 꽤 괴롭게 아이를 달래며 식사도 못하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혼자서 아이를 케어하는 사람 치고 기내식까지 앉아 먹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했었다. 저녁 7시부터 자기 시작한 하니는 10시가 되자 울면서 잠에서 깨었다. 나는 달래주면 다시 잠들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
2019. 10. 8. 03:30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독일에서 태어난 하니, 이유식은 어떻게 할까? 하니가 2개월에서 3개월쯤 되었을 때 독일에 사는 지인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이유식은 어떻게 할 거야? 한국식으로? 아니면 독일식?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일단 만들어 먹이는 것을 선택했다. 누가 준 이유식 책 한 권을 교과서로 삼아 애호박-감자-브로콜리-양배추-단호박-고구마같은 야채나 바나나, 사과 같은 과일 종류 하나씩을 골라 알나투라Alnatura에서 산 자스민 쌀로 쌀미음을 만들어 먹였다. 내 자식을 위한 요리는 보람도 있고 의욕도 넘쳤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전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뭔가를 만들었는데 아기가 그걸 한입 한입 맛있게 받아먹어 주는 경험은 그 흔한 옛날 말처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며 먹기 전부터 퍽이..
2019. 10. 8. 02:51 2017-2021년 독일/육아 이야기
독일에서 아기를 키우다 응급상황이 생기면? 곧바로 응급실로!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아침에 잠이 덜 깬 나는 하니를 남편에게 맡기고 쪽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은 하니와 조금 놀아주다가 배가 고파하는 것 같아서 분유를 타 왔다. 하니는 유난히 분유를 잘 먹지 않았다. 원래 보통 물려주면 절반까지는 단숨에 마시는 아이인데 몇 모금 먹고 떫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온도가 너무 뜨거운가?" 남편이 의아해하길래 잠결에 나는 분유를 만져봤고 온도는 별로 뜨겁지 않았다. 남편은 다시 젖병을 물렸지만 하니는 잘 먹지 않았다. 여기까지면 별 다를 것 없는 평온한 상황일 것이다. 하니는 분유를 잘 먹기도 하지만 잘 안 먹기도 하니까. 아기가 잘 먹지 않는 데에 별 의문이 없었다. 하니는 20ml를 겨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