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8. 11:40 2017년 한국
카페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까? 나는 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두기로 마음 먹기까지 사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뭔가에 홀리듯이 이끌리듯이 마음을 먹었다는 편이 맞다. 한 달 간의 육체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고 갑자기 (난데없이)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도 같이하는 바람에 매일 항생제를 복용해 몸에 무리가 왔던 것이 방아쇠를 당겨줬다. 4월이 시작되고 약을 먹고부터 나는 줄곧 지쳤고 힘들었다. 나는 그만두는 것을 잘 못한다. 이번에도 마음먹기까지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3월 중순부터 매일매일 반복되는 마감 청소와 걸레질이 지쳐서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을지도. 아르바이트 하나 그만두는 것도 누르고 누른 만큼 다른 어떠한 일에 있어서 '그만 둔다..
2017. 3. 30. 09:00 2017년 한국
집 없이 떠돌고 있고 지금은 형님과 아주버님 댁에서 얹혀살고 있는 우리 부부. 다니던 직장까지 정리하고 유학을 준비하려고 학원에 다니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내조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아내. 요즘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된 언니들이나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 그 누가 우리 상황을 봐도 '너 진짜 괜찮겠냐?'고 걱정과 염려 섞인 질문을 한다. 이해한다. 우리의 지금 모습이 불안정해보이고 심각하게 위태로워 보인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렇게 물어봐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인간적으로, 정말 와 닿는다. 상황에는 '이미' 처해있고 나 또한 이렇게 되도록 선택을 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 상황을 어이없이 보고, 혹은 배꼽잡고 웃으면서 받아치는 것과 둘째로 비관하고..
2017. 3. 29. 22:24 2017년 한국
카페에서 일하다보면 손님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나가고 점점 뜨문뜨문 오는 타이밍이 있다. 그럴때 여지없이 하는 일이 잠깐의 수다. 길지도 않다. 한 20-30분 정도. 그때그때 주제는 다른데 몇일 전 주제는 '보험'이었다. 카페 사장언니와 다른 언니들 모두 나보다야 세상풍파를 더 모질게 겪은 분들로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고 그 경험을 근거로 내게 강하게 설득했다. 스물아홉 이 나이 먹도록 보험을 들어본 적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었던 터라 나는 적지 않은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아직도 안 들고 뭐했는지, 왜 결혼 전에 이런 거 하나 준비하지 못했는지, 그동안 인생 공부 안하고 도대체 뭘 공부한 건지 언니들은 나를 놓고 도통 이해를 못했다. '하하하. 그러게요. 나 진짜 이 ..
2017. 3. 28. 11:11 2017년 한국
입지 않는 옷들을 모두 정리했다. 완도에서 큰 박스로 6개나 짐을 받고서 좀처럼 손이 가지 않은 옷들만 따로 한 박스에 넣어 보관하던 중이었다. 거대한 짐짝처럼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그 짐을 오늘 드디어 처분한 것이다. 묵은 체증이 한번에 내려가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많은 물건이 나를 그 무게만큼 누르고 있다. 필요하지도 않고 다 하나씩 기억할 수조차 없는 자잘한 것들이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니며 무겁게 한다. 도통 쓸모가 없다. 아니 쓸모를 찾을 수 있을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가끔씩 내가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어버린다. 사기는 샀는데 그것이 매력적인 순간은 늘 짧다. 그것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기간이 지나고나면 물건은 저 기억 저편으로 묻혀버린다. 그리곤 짐이 되어 ..
2017. 3. 24. 10:16 2017년 한국
우리 부부는 서울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아니 내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잠에 드는 시간이 늦어졌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9시에 끝나는데 집으로 돌아와 씻고 아주버님 형님과 잠시 영어공부를 하고 나면 11시쯤 되기 때문이다. 잠에 들려고 누우면 일하면서 마신 커피의 영향인지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남편과 나란히 누워 수다를 실컷 떠는 것이다. 창문 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어와 방안의 불은 꺼져있지만 약간은 불그스름하게 보였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엔 최적의 공간이었다. 어제 우리가 나눈 대화는 우습게도 유학 가는 것을 다시 뒤집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왜 ‘우습게도’라는 표현을 쓰냐면 이미 이만큼이나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찌됐든 회사 나가는 것을 그만뒀고 해커스 ..
2017. 3. 17. 09:31 2017년 한국
남편의 현재 상태.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 농업개발 석사과정에 조건부 합격. IELTS 6.5의 점수를 6월초까지 내고 등록금을 내면된다. 이틀전에는 독일 호헨하엠 대학 석사과정에 원서를 썼고 거기도 IELTS 점수는 똑같다. 다른건? 등록금이 어마어마하게 다르지.덴마크는 1년에 2천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학비가 들어가는데 독일은 4백만원?정도다. 처음에는 코펜하겐이 더 규모도 크고 농업분야에서는 연구도 더 활발히 하기 때문에 그곳에 우선순위가 더 있었는데 지금은 좀 현실적으로 보게 됐다고나 할까. (제발 독일 붙었으면 좋겠다는..)이건 내가 지금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현실 감각이 더 생겼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 하기 전에는, 가서 내가 접시닦이라도 하면서 생활비 벌지 뭐, 라고 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