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식물이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자연친화적인 사람이라 식물에 관심이 크다. 작년 독일 집으로 처음 들어온 그 다음날 가장 먼저 샀던 것은 이불도 아니고 그릇도 아닌 식물과 화분이다. 그렇게 들어온 식구들이 대파와 라벤더. 대파는 9월에 씨를 뿌려 길고 긴 겨울을 가녀린 줄기로 간신히 버티더니 봄을 맞아 하늘 위로 쭉쭉 뻗어나가고 있다. 라벤더도 겨울잠 자듯 웅크리고 겨울을 나다가 봄을 맞아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라벤더가 봄을 맞아 피워낸 보라색 꽃은 한동안 우리가 감상하다가 최근엔 남편이 몇개 꺾어 방 곳곳에 걸어두었다. 집이 보기 좋아졌다.

쭉쭉 뻗어 나가는 독일 대파. 올 여름엔 뜯어먹을 수 있으리.

박군의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는 말린 라벤더. 

남편은 저렇게 늘어지는 화분을 갖고 싶다고 근 몇주간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결국엔...(샀다)


3월에 독일에 놀러온 친구들이 바질 화분을 사서 놓고 갔는데 덕분에 한동안 우리도 바질을 꺾어 잘도 먹었다. 피자에 넣어먹고 파스타에 넣어먹고 토마토랑도 같이 먹고. 그러다 이젠 하얀 꽃이 피고 잎이 노랗게 변하게 됐다. 남편이 그러는데 바질에 꽃이 피면 먹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감상용으로 바질을 놓고 키우다가 다시 먹고 싶어져서 며칠 전에 아기 바질 화분을 샀다. 어서 먹고 싶은데 아직 키가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질아 얼른 자라렴. 열심히 먹어줄테니.


집에 식물 전문가가 있어서 참 편하고 좋다. 요즘같은 날씨는 햇볕이 워낙 강해서 하루에 한 번씩 엄청난 양의 물을 줘야 하는데 그 일은 늘 남편이 맡아서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남편이 급하게 학교로 가느라 나한테 '학원 다녀오면 화분에 물을 꼭 주세요'하고 나에게 부탁을 했지만 집에 오자마자 점심 차려 먹고 소파에 뻗어 누워 쉬느라 깜빡하고 말았다. 저녁에 집에 도착한 남편은 발코니부터 들어가 바짝 말라가는 식물들부터 챙긴다. '물 안줬어?'하고 물어봤을 때의 그 섬뜩함이란.. (미안...)

5월에 놀러온 친구들이 네덜란드 여행을 하고 독일로 들어오면서 아직 피지 않는 튤립 구근을 사다줬다. 우리집 식물 전문가님은 곧장 낡은 후라이팬에 튤립 구근을 옮겨 심었다. 버릴까 말까 몇달 전부터 망설였던 후라이팬은 화분으로 다시 탄생했다. 이렇게 보면 남편의 머리속에는 버릴 물건 재활용하는 방법이 수백개쯤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튤립도 여름볕을 받으며 쑥쑥 피다가 장렬하게 져버렸다. 심은 지 일주일도 안됐을까. 구근 보관만 잘 하면 내년에 다시 필 수 있다고 하니 잘 보관 해야겠다. 아 물론 내가 아니라 남편이.

후라이팬 안에서도 잘 자란다.


상추도 아주 쑥쑥 잘 자라고 있다. 묘목을 사놓고 심은 지 며칠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빼곡하게 공간을 메웠다. 몇번 잎을 뜯어 겉절이를 해먹었는데 맛이 좋다. 자연을 먹는 기분. 신선도가 그만이다. 단지 많은 양을 배출하는게 아니라 아쉽긴 하지만. 딱 두 사람이 일주일에 한번 먹을 양이랄까. 

이제 꺾어 먹어줄 때가 돌아왔다.


기회가 되면 깻잎과 명이(산마늘)도 키우고 싶다. 지난번에 남편과 함께 호헨하임 대학교 도서관에 공부하러 갔다가 잠깐 정원 산책을 했는데 깜짝 놀랐다. 명이가 지천에 널려있던 것이다! 장아찌를 담궈 먹으면 족히 백년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규모였다. 지천에 깔린 명이 사잇길을 거닐 때 느꼈던 그 알싸한 향이란! 여린 잎으로 몇 잎 뜯어와서 장아찌를 담궈먹고 싶어서 점심 먹고 다시 명이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무단으로 학교 소유의 명이잎을 뜯다가 걸리면 남편이 짤리지 않을까 싶어 통을 꺼내지도 못하고 향만 맡고 왔다. 나중에 씨를 받아와서 우리집에서 키우기로. 

마늘 향이 풍기는 호헨하임의 정원 (한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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