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잊지못할 유럽여행 계획하기

부모님과 함께 떠난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일본 오키나와였다. 우리 부부가 캄보디아로 떠나기 두 달 전이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께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본 적이 없으셨기 때문에 순전히 캄보디아에 오시는 예행 연습 차, 추억도 쌓을 겸 겸사겸사 일 주일간 다녀왔다. 두 번째는 두 분이서만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오셨다. 간단히 프놈펜 시내를 둘러보고 시아누크빌이라는 바닷가에 가서 짧게 휴양을 보내고 왔다. 일본행으로는 2시간, 캄보디아로는 5시간 비행을 하셨다면 이제는 유럽. 유럽은 캄보디아의 두 배가 넘는 거리다.

딸과 사위가 유럽에 있을 때 한번 여행하셔야 하지 않겠냐고 운을 띄웠던 것은 작년부터였다. 엄마는 주변 지인들도 한번씩 유럽여행을 다녀오셨는지 이미 마음을 먹으신 상태였다. 아빠를 설득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가기 싫은 이유를 말씀해보시라고 한번은 여쭤본 적이 있는데 비행 시간이 너무 길다고, 아빠 무릎하고 허리가 안 좋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학생으로 어렵게 살고 있는데 여길 오게되면 우리가 돈을 많이 쓰지 않겠냐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속엣 말씀을 하셨다.

모두 맞는 말씀이다. 비행 시간도 너무 길고 엄마 아빠 두 분만 오는데 부담도 많이 되고 돈도 많이 든다. 하지만 여행은 원래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거라고, 두분이 건강하실 때 좋은 추억 쌓는게 좋지 않겠냐고, 또 딸이 아빠를 엄청 보고싶다고 온갖 애교와 알랑방구를 뀐 결과, 마지못해 허락으로 마음을 돌려주셨다.

친오빠의 재정 지원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이 올해 3월이다. 여행 기간은 8월 20일부터 9월 4일까지 15박 1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했다. (1인 왕복 100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이제 이 기간동안 어떻게 부모님을 모실지는 내가 고민하고 채워나가야 하는 부분으로 남았다. 

Willkommen in Deutschland! 정확히 말하면 Heidelberg :)


부모님과 유럽여행 일정을 짤 때 고민해봐야 할 것들

우선 부모님이 가고싶어 하시는 곳이 어딘 지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파리의 에펠탑은 가봐야하지 않겠냐고 딱 한 말씀 해주셨다. 오케이, 일단 파리 일정을 넣고. 너무 많은 이동은 피로감을 키우기 때문에 최대한 국가 간 이동은 줄이기로 결정했다. 첫 주에 3박 4일 여행을 다녀오고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온 뒤 주말을 쉬고 그 다음주 3박 4일 여행을 떠나는 걸로 대충 윤곽을 그려보았다.

예산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부모님께서 여행에 필요한 재정을 가져오기로 하셨고 우리도 셋방 쯔비쉔 운영으로 모아놓은 돈을 조금 여행 경비로 보태기로 했지만 부모님께서 가져오시는 돈 만큼의 규모로는 쓸 수가 없는 형편이다. 똑같이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교통비도 숙박비도 식비도 기타 여비도 모두.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모님께서 가져오신 돈 위에 우리가 아주 조금 보태, 4명분의 여행을 한 셈이다.

내가 세운 계획은 프랑스 파리에서 3박 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3박 4일, 그리고 남은 날 중 당일치기로 스위스, 당일치기로 독일 하이델베르그 등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사실 스위스 당일치기 여행은 미리 계획하지 않았는데 너무 아쉬워서 마지막 일정에 넣어버렸다. 생각해보니 파리, 로마 모두 도시 여행이라 자연을 좋아하는 부모님과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과감히 포기해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모두가 가는 관광 명소라고 꼭 굳이 우리도 가야 할 필요는 없다. 파리에서 워킹투어를 하며 시내 곳곳을 둘러보고 대망하던 에펠탑을 본 건 좋았지만 사람들 많고 복잡하기만 한 루브르 박물관은 꼭 가지 않아도 됐다. 한 시간 반을 꼬박 대기 줄에 서서 기다렸다가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가 구경을 하지 않아도 됐다. 파리에 왔기 때문에, 다들 한번씩은 가는 곳이니까 구색 맞추기식으로 끼워 넣었던 일정들이 항상 좋지만은 않았기에 이 점은 크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모님 보기 좋으시라고 모시고 갔는데 고생만 시키고 돌아오게 될 수도 있으니.

파리 워킹투어는 정말 옳은 선택이었다. 개중에 옳은 선택들도 몇가지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꼭 기억해야 할 사실. 부모님의 체력!!

부모님께서는 월요일에 도착하셨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슈투트가르트로 넘어와 집으로 모시니 벌써 저녁 8시가 넘어가는 시간이 된다. 한국 시간으로 하자면 새벽을 꼬박 새신 샘이다. 비행기에서는 좀 주무셨냐고 여쭤보니 그야말로 한 숨도 못 잤다고. 이렇게 피곤한 상태로 잠자리에 드셨지만..... 그럼에도 부모님은 새벽 내내 못.주.무.셨.다!!!!!

9시 반쯤 자리에 누웠는데 12시쯤 깨셨다고 하신 것 같다. 그 때부터 두 분이 번갈아 화장실을 들락날락... 잠결에 어디선가 뽀시락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했는데, 엄마는 심지어 부엌에 들어가 찬장을 하나씩 다 열어보고 살림살이를 하나씩 다 살펴보셨다. 그렇게 동트기만을, 딸 깨기만을 기다린 아침. 얼마나 답답하고 심심하실까. 유럽에서의 첫 날을 이렇게 어물쩡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하이델베르크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김밥까지 싸고 간식까지 들고 야심차게 떠난 첫 날 여행, 부모님도 들뜨신 듯 보였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오전 컨디션이 최상이신 것을.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 도시락을 까먹고 1시부터 본격적으로 성에 올라가 구경을 하려고 하는데 벌써 엄마 아빠는 컨디션이 뚝뚝 떨어지고 계셨다. 2시도 안 됐는데 이제 내려가자고, 엄마 아빠의 표정에서 피로감이 급격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할 때 쯤에는 깨우기도 죄송할 정도로 곤히 잠드셨다. 이렇게 초저녁도 아니고 초오후에, 그것도 3-4시쯤 스위치 꺼지듯 체력이 꺼져버리는 게 일주일은 갔다. 유럽에 오신지 며칠도 안돼 파리를 갔는데 저녁 야경을 보여드린다고 유람선을 태워드린 건 내 큰 착각이자 실수였다. 1시간 10분동안 유람선을 타면서... 한 시간은 주무시고 10분정도 깨어 계셨으니. 기억해야 한다. 오후 일정과 저녁 일정은 피하는게 좋겠다.

어렵게 어렵게 본 에펠탑의 야경. 하지만 부모님은 이 야경에 깊은 감동을 받으셨다는...


부모님이 앉을 곳은 우리 생각보다 중요하다

기차를 타든 열차를 타든 잠깐 대기를 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님이 잠시라도 앉아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자리를 꼭! 꼭!!! 꼭!!!!! 미리 알려드려야 한다. 한 정거장을 가든 10정거장을 가든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앉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 앉으시라고, 저기 앉으실 수 있다고 미리 귀뜸을 해드리지 않는다면 더 빨리 체력이 고갈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로 이동하기 전, 몇 분이 걸리고 어떤 운송수단을 타서 얼만큼 이동하는지 정직하게 제때제때 말씀 드리는 센스도 필요하다. 집을 나서기 전 '어디로 갈거에요', '역까지는 몇 분 걸어야 해요'라고 언지를 드려야 하고, 역에 도착해서는 '몇 정거장만 가면 돼요', '몇 분정도 걸려요'라고 말씀드리는 게 좋다. 미리 물어보시기 전에 얼마나 걸리는 곳인지 알려드림으로써 부담감을 덜어드릴 수 있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부모님의 피로도를 더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요한건 감정이 상하지 않는 것, 싸우지 않는 것

여행을 하다보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너무나도 많은 옵션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스트레스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감정적으로 더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 함께해온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더 쉽게 분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요인을 서로에게 돌리기가 아주 취약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불만사항을 얼만큼 표현하는 지는 가족들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여행은 특수 상황이다. 나를 제외하고도 모두가 예민하고 피곤하고 지쳐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예민하기 이를 대 없는 인솔자 자식들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따라다니는 부모님도 감당할 수 없이 피곤하시다는 점을 늘 기억하는 게 좋다. 

파리의 색다른 풍경을 보고 참 좋아하신 두분.

하루는 주말이 되어 일정이 없는 날이 있었는데 (남편은 없었다.) 셋이서 가까운 공원이라도 다녀올까 하고 밖을 나섰다. 길도 잘 모르는 엄마는 나보다 앞서는 듯 빨리 걷더니 막무가내로 앞질러 가버렸다. 돈이 아까워서 공원가는데 요금을 내고 열차를 타기 싫다는게 이유였다. 저만치 앞서가더니 작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탄다. 그네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니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을 자리에 서서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역시나 돌아오질 않는다. 나는 엄마 뜻에 굴복하기 싫어 한참을 골목 어귀에 앉아있었다. 엄마가 걸어간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내 모습이 보일까봐 안 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엄마의 고집에 꺾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공원은 다녀오지 못했다. 이런 식이 많이 되풀이된다. 뭘 하자고 제의하는 나, 돈 쓰기를 거부하는 엄마 사이의 갈등. 남편이 있을 때는 조금 덜한데 아빠와 엄마, 나만 있는 경우가 되면 여지없이 쓰디쓴 잔소리와 타박이 날라온다.

어떠한 경우에도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오면 혼자서 삭히고 오던지 급히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여행은 싸우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견차이는 부드러운 말로도 쉽게 좁혀지기가 힘들 뿐더러 큰 언성이 오고가는 현장에는 더욱 그러하다. 

***

이만하면 4명이서 독일(조금),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아주조금)를 알뜰하고 재밌게 다녀온 것 같다. 돌이켜보니 피곤하고 지친 추억은 사라지고 좋은 추억만 남았다. 그때가 정말 좋았구나 싶을 정도로. 아니 정말 최적의 시기였다. 유럽에 오실 여유가 되신 부모님, 아기가 아직 없어 모시기 자유로웠던 우리들. (아기는 뱃속에 있었지만..) 여행하는 내내 뱃속에 희망이도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잘 버텨줬다. 돌아보니 아주 복을 누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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