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2. 23:34 2017년 한국
오늘 아주 오랜만에 음악치료사들이 많은 곳에 다녀왔어요. 전국음악치료사협회에서 학술포럼을 여는데 올해 교육 이수 시간도 채울 겸 다녀왔습니다. 음악치료사 자격을 따면 5년간 자격이 유지가 되는데 그 기간 이후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5년안에 80시간의 교육을 들어야 해요. 5년간 80시간이니 1년엔 16시간, 그 중에 50%는 협회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니 꽤 복잡하죠. 올해 안에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이번 뿐인 것 같아 주제가 뭐든 보지도 않고 무조건 신청했습니다.뭐랄까. 학술대회같은 곳에 가는 것은 왠지 쑥스러워요. 저처럼 핀둥 핀둥 노는 치료사도 또 없겠죠.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노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새삼스럽게 큰 온도차이로 다가와요. 생기 넘치는..
2017. 4. 20. 10:32 2017년 한국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사람은 누구인지 아직까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수다를 떨려고 만났다가 불편한 질문만 잔뜩 받은 나 일지도, 혹은 '좋은 마음으로' 이것 저것 질문하다가 뜻하지 않게 내 예민함과 방어적인 태도에 불편했던 A 일지도. 내내 찝찝함과 불쾌함을 해결하지 못한채로 시간도 함께 흘러버렸고 감정만 남아 허공을 떠다니고 있다.'결혼하면 원래 그래?'를 질문하는 의도 자체는 선하고 순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듣는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때 내 표정은 일그러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가 어떤 '그래'에요"라고 되물었다. A는 '돌리지 않고 솔직히 얘기할게'로 운을 띄웠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결혼하더니 남편 가는데로 남편 하자는데로 휘둘리는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
2017. 4. 8. 11:40 2017년 한국
카페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까? 나는 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두기로 마음 먹기까지 사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뭔가에 홀리듯이 이끌리듯이 마음을 먹었다는 편이 맞다. 한 달 간의 육체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고 갑자기 (난데없이)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도 같이하는 바람에 매일 항생제를 복용해 몸에 무리가 왔던 것이 방아쇠를 당겨줬다. 4월이 시작되고 약을 먹고부터 나는 줄곧 지쳤고 힘들었다. 나는 그만두는 것을 잘 못한다. 이번에도 마음먹기까지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3월 중순부터 매일매일 반복되는 마감 청소와 걸레질이 지쳐서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을지도. 아르바이트 하나 그만두는 것도 누르고 누른 만큼 다른 어떠한 일에 있어서 '그만 둔다..
2017. 3. 30. 09:00 2017년 한국
집 없이 떠돌고 있고 지금은 형님과 아주버님 댁에서 얹혀살고 있는 우리 부부. 다니던 직장까지 정리하고 유학을 준비하려고 학원에 다니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내조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아내. 요즘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된 언니들이나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 그 누가 우리 상황을 봐도 '너 진짜 괜찮겠냐?'고 걱정과 염려 섞인 질문을 한다. 이해한다. 우리의 지금 모습이 불안정해보이고 심각하게 위태로워 보인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렇게 물어봐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인간적으로, 정말 와 닿는다. 상황에는 '이미' 처해있고 나 또한 이렇게 되도록 선택을 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 상황을 어이없이 보고, 혹은 배꼽잡고 웃으면서 받아치는 것과 둘째로 비관하고..
2017. 3. 29. 22:24 2017년 한국
카페에서 일하다보면 손님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나가고 점점 뜨문뜨문 오는 타이밍이 있다. 그럴때 여지없이 하는 일이 잠깐의 수다. 길지도 않다. 한 20-30분 정도. 그때그때 주제는 다른데 몇일 전 주제는 '보험'이었다. 카페 사장언니와 다른 언니들 모두 나보다야 세상풍파를 더 모질게 겪은 분들로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고 그 경험을 근거로 내게 강하게 설득했다. 스물아홉 이 나이 먹도록 보험을 들어본 적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었던 터라 나는 적지 않은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아직도 안 들고 뭐했는지, 왜 결혼 전에 이런 거 하나 준비하지 못했는지, 그동안 인생 공부 안하고 도대체 뭘 공부한 건지 언니들은 나를 놓고 도통 이해를 못했다. '하하하. 그러게요. 나 진짜 이 ..
2017. 3. 28. 11:11 2017년 한국
입지 않는 옷들을 모두 정리했다. 완도에서 큰 박스로 6개나 짐을 받고서 좀처럼 손이 가지 않은 옷들만 따로 한 박스에 넣어 보관하던 중이었다. 거대한 짐짝처럼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그 짐을 오늘 드디어 처분한 것이다. 묵은 체증이 한번에 내려가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많은 물건이 나를 그 무게만큼 누르고 있다. 필요하지도 않고 다 하나씩 기억할 수조차 없는 자잘한 것들이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니며 무겁게 한다. 도통 쓸모가 없다. 아니 쓸모를 찾을 수 있을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가끔씩 내가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어버린다. 사기는 샀는데 그것이 매력적인 순간은 늘 짧다. 그것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기간이 지나고나면 물건은 저 기억 저편으로 묻혀버린다. 그리곤 짐이 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