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22. 06:08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남편이 페루로 가고 나서 나는 한동안 금단 증상을 겪었다. 늘 함께 있던 사람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이렇게 난감한 일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방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부엌에 한번 안방에 한번 거실에 한번 작은 방에도 한번. 볼일이 있는 사람처럼 아니, 해야할 일을 까먹은 사람처럼 부산하게 왔다갔다. 집 밖을 나가야 할 때는 시동을 거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독일에서 열쇠를 잃어버렸거나 집에 두고 나간다면 그것만큼 재앙이 없으므로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 들어간다) 호주머니에 열쇠를 넣어 놓고도 몇번이나 손으로 만져보아야 한다. 교통카드도 빼놓을 수 없다. 교통카드를 제대로 챙겼는지 두번 세번 확인하고 문을 닫기 전에 한번 더 만져보고 닫는다. 집 열쇠는 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2018. 2. 19. 06:44 2017-2021년 독일/일상 이야기
한 달간 글을 못 썼다. 그 사이 나는 두번째 유산을 겪었다. 첫 유산 후 일년만에 테스트기 빨간 두 줄을 보게 됐는데 그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6주쯤 됐을까. 산부인과에 걸어둔 예약일이 채 가까이 가지도 못했는데 조금씩 출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놈의 출혈. 작년에도 나를 괴롭히더니 이번에도 나쁜 징조로 사인을 준다.산부인과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대형병원 응급실에만 세 차례. 세 번째 방문에서 유산을 거의 확진받고 수술로 자궁 내 아기집을 제거할 건지 약물로 할 건지 정해야 했다. 작년에는 수술로 했으니 이번에는 최대한 자궁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약물로 하기로 하고 약을 받아온게 지난주 수요일. 자궁을 수축하는 약을 3일간 복용하고 정말 죽을 것 처럼 아팠다. 뭔가 나오긴 했다던데 아직 피가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