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한 달간 글을 못 썼다. 그 사이 나는 두번째 유산을 겪었다. 첫 유산 후 일년만에 테스트기 빨간 두 줄을 보게 됐는데 그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6주쯤 됐을까. 산부인과에 걸어둔 예약일이 채 가까이 가지도 못했는데 조금씩 출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놈의 출혈. 작년에도 나를 괴롭히더니 이번에도 나쁜 징조로 사인을 준다.

산부인과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대형병원 응급실에만 세 차례. 세 번째 방문에서 유산을 거의 확진받고 수술로 자궁 내 아기집을 제거할 건지 약물로 할 건지 정해야 했다. 작년에는 수술로 했으니 이번에는 최대한 자궁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약물로 하기로 하고 약을 받아온게 지난주 수요일. 자궁을 수축하는 약을 3일간 복용하고 정말 죽을 것 처럼 아팠다. 뭔가 나오긴 했다던데 아직 피가 다 나오진 않았다고 한다.

독일에 온 지 6개월. 이제 막 쉬운 문장으로 아주 기본적인걸 표현하는 단계에서 병원을 들락날락 거리고 예약을 잡기 위해 전화로 말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이런게 힘들었다고 얘기하면 대부분, 영어로 얘기하지 그랬어? 라고 아주 쉽게 말하던데 나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이 잘 안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독일어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침착하게 영어로 표현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불안하고 떨고 힘들었을까 싶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땐 정말 침착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모든 상황에서 모든 선택에서 침착하지 못했다. 나는 뭣도 모르겠고 그냥 울고 싶은 심정인데 병원에는 가야하고 병원에 가면 내 증상을 설명해야 하고 하라는 대로 해야하고.. 물론 수술을 할지 약을 먹을지와 같은 중요한 선택에서는 영어로 다시 설명을 부탁하거나 의견을 얘기하긴 했지만 그 외에 모든 뒷처리는 독일어로 해야했다. 나의 이 짧은 독일어로. 

전화하는 건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내가 해야할 말은 대본이라도 써서 얘기하지만 그 뒤에 수화기 너머로 뭐라고 하는지를 못 알아 듣는다.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시겠어요? 아니면 조금 천천히 얘기해주시겠어요? 이 쉬운 말을 왜 못했니. 지금 생각해도 답답하다. 통화를 끊고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게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약물 배출도 잘 됐고, 사후 검사를 위해서 산부인과 예약을 잡기 위해서 걸은 통화였다. 해어질대로 해어진 마음에 수화기 너머의 불친절은 상처에 뿌려진 소금이었다. 나는 울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작은 불친절이 시동을 걸었을 뿐.

이제 고작 A2가 끝났다. 이제 고작 6개월 공부했다. 스스로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하필이면 이렇게 말 못할 때 이런 일을 겪다니 참으로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병원과의 전화 소통이나 예약같은 부분은 바로 해결할 수 있었다. 진작 주변 분들한테 도움을 청하지 그랬어, 이런 말도 많이 들었는데. 막막하고 답답한 감정은 도움을 부탁한다고해서 말끔히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다.

작년에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캄보디아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감히 훨씬 수월했노라 말할 수 있겠다. 마취를 잘 했고 큰 고통 없이 수술을 했으니까. 수술 후에도 엄마의 도움으로 몸조리를 잘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은 보다 업그레이드 된 난이도다. 주일 아침 응급으로 3시간동안 복도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뭐가 이렇게 빡쌔냐. 늘 생각하지만 인생이란게 참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구나. 그래도 어쩔수 없지! 다른 희망을 갖는 수 밖에.

2월은 피곤한 한달이었다. 작든 크든 모든 결정은 사람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든다. 남편은 수업 익스커션으로 2주간 페루에 갔고 나는 남편이 자리를 비운 휑덩그레한 집에서 꾸역꾸역 버텨나가는 중이다. 늘 함께있던 자리가 빈자리로 남아있어 사실은 힘들지만, 남편이 가기 전에 아프고 끝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약해지지 말자.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시집이 떠오른다. 이 시간도 잘 보내면 되지 뭐. 내일부터는 B1 수업이 시작된다. 열심히 해야지.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시집. '약해지지 마' (사진 출처: http://pencilvase.blog.me/140187843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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