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내려놓자 주변에 생기가 넘쳐 흘렀다

뎅기열로 일주일간 태국에 머물었던 우리 병실은 방콕병원의 꼭대기인 16층에 있었다. 고요한 오전시간을 방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 도착한 지난 수요일 아침부터 줄곧 9시만 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어마어마한 공사음이다. 바로 머리 위에서 콘크리트 벽을 쪼개는 것같은 생생한 소음이 시끄러워 1층 로비나 카페로 대피했다.


방콕병원 Bangkok Hospital의 모습

한번은 로비에 앉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흘러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국적을 불문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아이와 어른할 것 없이 손에 전자기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쯤 됐을까, 소파에 앉자마자 테블릿 pc를 꺼내더니 지금까지 한번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 남자애 옆에 앉은 할머지도 큼지막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돋보기 안경을 빼들어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아이 엄마로 보이는 분은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나도 무심결에 핸드폰부터 꺼내들었다가 잠시 내려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봤다. 뭔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린다.

내친김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변 관찰을 시작했다. 로비에는 작은 무대가 있었다.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매혹적으로 자리잡고 그 옆으로 콘트라 베이스가 누워있다. 마침 음악회가 예정되어 있는지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무대 위로 올라왔다. 꼬마아이들은 벌써 신기한지 손짓을 하면서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내 옆으로는 꼬부랑 할머니가 딸과 손녀로 보이는 여인들의 손에 이끌려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산책 중이다. 할머니는 어느때마다 갑자기 나뭇가지 같은 손을 공중으로 휘저으면서 뭐라고 보채시는데, 그럴때마다 여인들은 할머니와 눈을 맞추며 다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이 듣기가 참 좋았다. 여인들은 나와도 가끔 눈이 마주쳤는데 내가 희미한 미소를 짓자 나에게도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로비에는 이제 근사한 라이브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노래하듯이 하늘거리는 피아노의 주선율 아래로 콘트라베이스의 음이 부드럽게 뒷받침을 해준다. 혼자였을때보다 훨씬 조화롭다는 느낌이 든다. 서로 상반되는 음색이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것을, 피아노 혼자 연주할때는 알았을까?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볼 것이 많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들을 것이 참 많다. 수첩을 들고 적어내려가다 보면 내 주변의 힘을 잃은 것들이 살아 숨쉬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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