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다가

남편과 산책을 나선 길이었다. 어느새 해가 길어져 저녁 8시가 되어도 아직 하늘이 파랗다. 우리는 와인밭 사이에 나 있는 길다란 오르막길을 걸었다. 중턱쯤 오르니 왼편으로 우리집이 보인다. 늘 거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오르막길에 서서 반대로 집을 바라본다. 꼭 액자 속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4월 초에는 민들레로 길가가 노랗게 물들어있더니 이제 꽃은 어디론가 쏙 들어가버리고 민들레 홀씨가 지천에 널려있다. 포도밭 주변에도 홀씨로 바닥이 빼곡히 매워져있다. 나는 지나가다말고 홀씨대를 잡아 꺽어 입가로 가져왔다. 그리곤 후- 하고 양볼에 바람을 넣어 한 숨에 불어보았다. 밤의 어스름이 내려오는 푸른 하늘로 하얀 홀씨들이 흩뿌려진다. 그 가벼움이 너무 신비스러워 하나를 더 꺾었다. 이번엔 좀더 약하게 불어봤다. 약한 입김에도 홀씨가 하늘하늘 날아다닌다. 뭔가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어느 봄날 저녁 길가에 늘어선 민들레 홀씨를 꺾어 씨를 뿌리는 모습이란.

Copyright 혜진! 홀씨가 신비롭게 나왔다. :)

민들레가 자라는 과정이 참 신비롭다고 생각했다. 누가 물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강제로 자라도록 용을 쓰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도 잘 자라는 모양이,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자연의 힘으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고 또 다른 씨를 뿌리고. 내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자연의 방식이 이 세계에 참 가득 차 있다. 풀이 자라나는 비밀, 새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지저귀는 비밀. 이 자연이 움직이는 비밀은 아마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길가에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다. 이 고양이도 저녁을 한술 뜨고 산책을 나온 것인지 여유있게 어슬렁 거리며 거리를 노다닌다. 반갑게 아는 척을 해보니 저돌적으로 다가와 내민 손에 머리를 강하게 문지른다. 한참을 내손 남편손 왔다갔다 하더니 획 시선을 다른 쪽으로 옮겼다. 그리곤 와인밭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다. 뭘 보고 있는 걸까. 우리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더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에도 고양이는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우리도 고양이처럼 하릴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가끔씩은 이렇게 산책을 나가 새로운 걸 보는 것도 머리를 식히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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