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놀러온 우렁각시 친구들

작년 8월에 독일에 도착하고 난 후 나는 줄곧 봄을 기다려왔다. 독일에서 맞이한 첫번째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3월 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친구들이 우리집으로 놀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3월이 드디어 왔고 서울에서 반가운 손님이 슈투트가르트로 찾아왔다.

아주 먼 길을 건너 한국에서 이곳까지 방문해준 두 친구는 9월에 결혼을 앞둔 친구들이다. 이 둘과는 서울에서 지내고 있을 때 같은 교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돈독한 관계를 쌓고 있다. 둘을 픽업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갔는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반가움에 심장이 쿵쾅쿵쾅. 무슨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마냥 들떠있었다. 친구를 유럽에서 만난다니! 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이렇게 우리의 짧고도 아쉬운 일주일의 동거가 시작됐다.


요리사 친구가 집에 머문다면...

꿀 떨어지는 친구들. 우리집에 깨를 뿌리고 갔다.

다행이 도착한 그날 꽁꽁 얼어붙은 슈투트가르트의 겨울 날씨가 풀리는 참이었다. 2월 말부터 그간 없었던 혹한의 추위로 온 도시가 얼어붙어있었는데 친구들이 독일에 도착한 날은 화창하고 맑았다. 거실에 햇볕이 쏟아지다니! 이게 대체 며칠 만인지.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예비신랑 K군은 이탈리아 요리학교를 갓 졸업하고 유럽으로 날아온 따끈따끈한 요리사로서 일주일동안 우리 부부에게 심심치않게 훌륭한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이탈리아 오리지널 알리오 올리오, 까르보나라, 아라비아따 파스타와 연어스테이크와 튀김까지. 함께 먹은 매 끼니가 예술작품이나 다름 없었다. 맛은 또 어떠하고! 친구들을 대접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대접을 받아버렸다.

올리브향이 기가 막혔던 알리오올리오

계란 노른자 소스로 만든 까르보나라! 

정말 맛있었던 카프레제

6개월 밖에 안된 좁은 우리집 주방에서 이날 역사를 새로 썼다.

3L 기름에 제대로 튀겨낸 깐쇼새우

그리고 주인공 닭강정.

아름다운 튀김의 향연. 

이렇게 정성스러운 한입 샌드위치를 먹어 본 적 있는가?

다함께 하이델베르그 놀러갔을 때 K군이 만든 웰빙 샌드위치.

매운 고추로 맛을 낸 아라비아따. 진짜 맛있었다!

감격으로 박수를 쳐댔던 연어 스테이크.


우리 부부는 정말 일주일 내내 이탈리아 쉐프를 집으로 모셔 매 끼니 얻어먹는 느낌이었다. 어쩜 이렇게 맛있고 고운지. 친구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남편도 페루에 가있고 혼자서 외롭게 고분군투 하고 있었는데.. 그동안의 힘듦이 사르르 녹는 느낌..ㅠ_ㅠ

일주일의 일정은 대충 이랬다. 나와 남편은 8시쯤 각각 어학원과 학교를 가기 위해 나가고 친구들은 여유있게 아점을 만들어 먹고 12시쯤 나갔다가 5시쯤 들어오는 식.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이, 이 천사같은 친구들은 우리 먹을 점심까지 만들어놓고 나갔다는 것이다. 얘네들은 뭐? 날개 없는 천사다. 우렁각시가 유럽에 놀러 온 거다. 

학원에 갔다가 잔뜩 배가 고파 두시쯤 집에 도착하면 쪽지와 함께 근사한 이탈리아식 요리가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감자스프와 파프리카 참치롤.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는 줄..

마늘 바게트와 프리타타. 

요리사 친구를 두면 이렇게 좋다. 그 친구가 유럽에 사는 집까지 놀러오면 이렇게 더 좋다. 정말 점심 저녁 가릴 것 없이 맛있고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계속 대접받는 것이 쑥스러워서 하루는 우리 부부가 요리를 하기로 했다. 대단한 요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참치 김치찌개와 떡볶이로 한국의 그리운 분식의 맛을 내봤다. 떡볶이는 게눈감추듯 해치워버려서 사진도 없네.

참치 김치찌개와 치즈 계란말이의 조합.

약속이라도 한 듯 이날 우리는 디저트로 두 조각 씩 케이크를 사왔다.


친구덕에 소포도 받고 소포도 보내고..

정말 고마웠던 것이 이 친구들이 독일에 올 때 엄마가 보낸 먹거리 소포를 들고 와주었다는 것이다. 무겁게 이곳까지 들고 오게 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5kg만 보내시도록 엄마에게 신신당부 했지만... 천사같은 이 친구들은 캐리어 하나를 통째로 비워뒀다며 엄마를 안심시키는 바람에 무려 17kg의 소포를 받아 가져와버렸다. 

어마어마한 17kg 안에는 엄마가 만든 된장, 엄마가 빻은 고춧가루, 엄마가 말린 마늘, 사과, 감, 시래기 등등...

테트리스의 여왕 J양!! 박수쳐!!ㅠㅡㅠ

이렇게까지 많이 받지 않아도 됐는데..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나 그걸 또 꾸역꾸역 담아 가져온 친구들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서 울컥 마음이 북받쳤다. 해외배송 하기에는 돈이 비싸 엄마도 나도 뭘 보내고 받기가 한참 망설였는데 이렇게 가져와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거기에 또 캐리어 빈공간이 남는다고 촘촘하게 한국 라면을 담아 온 J양. 너네들이 최고다.

엄마에게 보낼 비타민과 화장품.

두 친구들은 독일에 올 때 캐리어에 거의 가득 내 소포를 가져와줬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때는 독일에서 산 것들로 채워간다고 했다. 뭘 많이 사서 가방에 쟁여 넣었는데도 공간이 남는다고 집으로 보낼 것 있으면 주라고 이번엔 또 나를 안심시키는 친구들. 얘네 왜 이렇게 착하니.. 독일에는 비타민제나 화장품 같은 것이 성분이 좋고 저렴해서 엄마에게 드릴 눈 비타민, 아빠에게 드릴 종합비타민과 화장품 등등을 담아 친구 편에 보냈다. 친구 덕에 효도도 한다.


슈투트가르트 스냅사진도 찍어보기

두 친구는 9월 결혼을 앞두고 이미 작년부터 계절별로 셀프 웨딩 포토를 찍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사진은 모두 찍었는데 겨울만 아직 남겨두고 있다고 하기에 이곳에서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소품도 의상도 아무것도 준비해온 것이 없었지만 독일의 근사한 풍경으로 느낌을 내보기로! 우리는 역 앞에서 빨간 꽃 한 송이를 사 들고 바트캉슈타트 옆 Unterer Schlossgarten 주립공원에 방문했다.

ㅎㅎㅎㅎㅎ한동안 굽히고 있었던 K군

아름다운 독일 풍경을 배경으로 천사같은 커플. 역시 공원은 독일이라지?


일주일은 너무 짧았다. 최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우리는 맛있는것도 많이 먹고 얘기도 많이 나누고 하루는 날을 잡아 기차타고 하이델베르그도 다녀왔다. 오랫동안 기념에 남을 사진도 많이 찍고. 다시 공항에서 친구를 보낼 때는 마음이 먹먹해졌지만 헤어짐이 있어야 다시 반가운 만남도 있는 거겠지. 이런 만남 너무 소중하다. 우리에게 '다음 기회'가 또 존재하길. 다음에 만날 때는 우리가 더 많이 대접해줄 수 있길.. 아주 특별한 일주일이었다.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