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캄보디아 이야기:: 내게 남은 것

꼭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귀국일이 왔고 남편과 나는 양손과 양 어깨에 짐을 가득 가지고 한국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프놈펜을 등지고 공항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정말 이렇게 가는건가 싶었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보니 캄보디아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1년간 캄보디아에 살면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으로도 말할 수 있다. 동전의 양먼처럼 극적으로는 좋으나 또 좋지 않은. 캄보디아의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생각나는대로 적어볼까 한다.

다시 한국으로..

1:: 누군가의 내가 아닌 나만의 나로서의 24시간

캄보디아에 오면 일단 첫번째로 느끼는 게 있다. 바로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에서의 시간의 흐름과 분명 다르다. 특히 할 일도 만날 사람도 몸을 담글 공동체도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른다. 그러니 뭐든 본인이 해야 한다. 내가 가장 낯설었던 것도 이거였다. 자의로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타의로 만남 약속이 있었고 '때가 되었으니', '만나야 하니까' 만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곳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내가 마음먹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다. 그냥저냥 얻어가다 걸린 일로 즐거운 주말은 나올 수가 없다. 주말이 재미있으려면 뭐든 계획해야 한다. 어디를 갈지, 누구를 만날지, 혹은 이번주는 그냥 집순이로 있을지.

   사정은 주말에만 관련되어 있지 않고 매일매일의 삶에도 이어진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멍하게 천장만 보다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건 정말 낯선 경험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하루의 스케줄이 뭔가로 가득 차있었던 것 같은데. 눈을 뜨자마자 하루가 급하게 시작되고 눈을 감을 땐 기절하듯 쓰러졌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 나는 내 의지로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했다. 글쓰는 재미에 빠져서 눈을 뜨면 글을 썼고 창문 밖의 새를 지켜보거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저녁도 똑같다. 매일이 반복된다. 밥 먹는 것도 씻고 쉬는 것도. 어영부영 뒹굴거리다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달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이런 흐름은 시간이 넘쳐나고보니 느껴졌다. 바쁘기만 할 때와는 내가 가진 내 삶의 통제력이 다르다.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으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힘이 커진다. 

   나는 이 주어진 시간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방해받지 않은 나만의 시간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 갔다. 나의 경우는 글쓰기와 영어공부였다. 오롯이 나를 위한 매일의 반복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작은 움직임은 큰 눈덩이가 되어 다음 날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2:: 네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첫번째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는데, 내 관심사가 좁혀졌다는 거다. 넘쳐나는 시간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나면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볼까 고민이 들기 시작한다. 마치 나에게 수십가지 색연필이 주어져 그것으로 색칠하듯 시간을 채워가는 것과 같다. 그동안 '관심있던' 색깔들과 '잘 쓰는' 색깔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는데, 색칠을 하다보면 내가 늘 쓰는 색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나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고 늘 '믿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것에 자주 시간을 들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에 30분씩이라도 기타를 연습하겠거니 믿고 들고 온 기타는 먼지가 쌓여갔다. 음악을 듣는 것도 생각보다 적었다. 

   대신에 뭔가 끼적거리는 데에는 별다른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고 그 행위 자체를 좋아했다. '글쓰기'는 내가 캄보디아에서 가장 자주 쓰는,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캄보디아에 오기 전까지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언어공부도 마찬가지. 내 빈 시간을 글쓰기와 언어공부라는 색깔로 채우는 것이 좋았다.  BBC 뉴스를 본다거나 방송을 듣는다거나 TED 강의에 빠져 하루에도 몇편씩 챙겨 보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은 스트레스가 아니고 '재미'였다.

   시간이 많았기에 들여다볼 수 있었던 나의 내면이 아닐까? 가지치기가 적당히 필요했던 내 인생에 적어도 내가 즐겨하는, 좋아하는 것들을 알게된 것은 큰 소득이다.


3:: 남편과의 대화

연애할 때도 한국에서 첫 신혼살이를 할때도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캄보디아에 오고 나서 대화를 의식적으로 하고자 노력했다. 환경이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고 관계가 축소되면서 상의할 거리는 많아지는데 서로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이 달라져서 오는 스트레스가 서로 다르고 상황마다 그 스트레스를 견디는 역치가 다르기 때문에 평소보다 예민한 레이더로 서로의 감정을 체크해야 했다. 그 과정은 대화를 통해서 가능했다.

   나는 서로 더 집중하게 되는 이런 상황이 좋았다. 문제가 생기면 함께 대화로 풀어가는게 남편과 더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외롭고 힘든 해외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 또한 매일같이 나눈 우리의 대화가 아닐까.


4:: 세계에 대한 내 인식의 변화

많은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22살 처음으로 유럽에 배낭여행을 혼자 다녀오면서 외국이 환상 속에 존재하는 머나먼 곳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시골가듯 비행기타고 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땐 마냥 좋아보이는 유럽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곳에서 배우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이번 1년간의 캄보디아 생활은 동경은 쏙 빠진 현실감각을 키워주었다고나 할까.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나와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있다는것.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자신의 문화권 안에서 충실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이전에는 없었던 감각이다.

   이것은 그동안 내 왜곡된 의식을 반증하기도 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못하는 나라 캄보디아'의 이미지가 내게도 있었으니 말이다. TV 매체에서 비춰지는 이미지는 과장됐거나 편파적일수도 있다는 것을 와서야 알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잘 지낸다고 보여주면 후원 모금이 어려우니. 더욱 자극적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현실도 안다. 

   캄보디아 문화 한 가운데서 본 캄보디아는 고유의 색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임금 수준이나 제반 시설이 열악하지만 그건 사실 다른 나라를 아는 우리의 입장. 캄보디아는 캄보디아 나름대로 잘 살기도 한다. 월급을 타면 맛있는 것 사먹고 갖고 싶었던 것도 사고 부모님께 돈도 보내 드리고. 도움의 대상 캄보디아에서 나와 같은 비슷한 사람으로의 전환은 1년간 캄보디아에 살면서 얻게 된 소중한 인식이다.


캄보디아에서 사는 1년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잔뜩 날카로워지기도 했고 괴로워하기도 했고 울기도 했지만 처음 남편과 해외에서 살아보는 이 경험은 값지고 행복했다. 이제 우리의 집은 한국으로 잠시 이동했다.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이제 어디로 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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