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한데 모여 나를 이룬다

아주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그동안 공책에 끼적인 글을 올리지를 못했는데, 아마 급격한 감정 변화를 어느선까지 오픈해야할지 선을 정하는게 어려웠던 것 같다. 이 블로그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데도 감정을 어느정도까지 보여줘야 할지, 솔직한 말로 어느 선까지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야할지 선을 정해놓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낮은 지점까지 감정이 내려갔거나 높낮이의 곡선이 평소보다 심할때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아예 노출을 하지 않아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다. 그게 조금 진정이 되면 슬슬 표현해볼까 하는 욕구가 올라오는 거다.

6월 중순부터 말까지 조금 엉망이었다. 서울살이 찬스가 끝에 달하고 있던 때이기도 하고 남편의 앞으로의 방향도 정해지지 않아서 불안정의 끝을 경험했다고나 할까. 거기에다 학교 연구소 업무 마무리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최대한 매끄럽게 인수인계를 하고 나오려고 애를 썼는데 마지막에 실수 대잔치가 벌어졌다. 두 달간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전부 한꺼번에 붉어져 나와버렸다. 마지막 한 건이 엄청나게 컸어서 감정 소모가 너무 심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소름이 돋는다. 실수가 크든 작든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절망이다. 완벽한 절망감에 갖혀 어딘가로 도망갈 궁리만 했다.

그런 일을 겪고 도망치듯 친정으로 내려가버렸다. 한 이틀 걱정 없이 푹 쉬고 올라오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에게 안좋은 소식을 듣게 된거다. 독일행을 결정짓는 마지막 아이엘츠 점수가 또 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 엉엉 울어버렸다. 듣기, 읽기, 쓰기까지 목표했던 점수가 다 잘 나와줬는데, 말하기만 말도안되게 낮은 점수가 나오는 바람에 6.0에서 오르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빈 방에서 혼자 눈물을 훔쳤다. 거실에 있는 엄마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눈물을 참아가면서.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천장의 LED등 무늬를 하나씩 샜다. 그래도 눈물이 안멈춰서 벽지의 무늬를 하나씩 샜다.

이 슬픈 스토리는 다행히 이렇게 끝나지 않고 반전이 있어줬다. 아홉번 죽다 한번 살아난다는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게, 학교측에서 앞전에 스피킹이 잘 나와준 6.0 점수와 이번 6.0을 합산해서 6.5로 인정해준 것이다.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가 마련해놓은 플랜 B, C, D, E에도 이런건 없었으니까. 인생은 생각한대로 되지 않아서 괴롭기도 하지만 상상하지 못한대로 이끌려지기도 해서 즐겁기도 한가.

결과를 받은 다음날, 얼떨떨하면서도 감격스러운 기분으로 미얀마와 말레이지아 여행을 다녀왔다. '결과야 어찌됐든 4개월동안 고생했다'는 마음으로 계획했었는데, 감사하게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여행 중에 남편이 많이 아팠고 남편의 아이폰7이 박살이 났다. 나쁜일과 좋은일, 또 나쁜일을 연달아 겪으면서 나의 태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을 겪었을 때의 내 태도가 어떤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겪을 때 내 태도는 어떤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이 내게 좋은 일이 될수도 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 내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라고 자주 말 한다. 동의한다. 지금의 좋은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겸손하게 보내고, 나쁜일이 있다면 그게 좋은일이 될 수 있으니 너무 낙담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다 좋게 받아들여도 되고. 이런 저런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 성숙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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