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았다, 쫄지 않았다

글쓰기가 조금 시들해진 건 사실이다. 더이상 설렘이나 기대감이 있기보다는 의무감이 더 큰 편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이니 어떻게든 자리에 앉자, 공책을 펴자, 펜을 잡자고 스스로에게 얘기한다. 만년필의 잉크가 얼마나 남았는지 괜히 빛에 비춰본다. 그래도 이 자리는 억지로라도 앉는다. 한줄만 써도 돼. 많이 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잊어버리지 않고 오늘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해. 이렇게 주문을 건다.

걱정하는데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진 않은데 실상 많은 시간을 염려하는데 쓰고 있다. 남편이 중압감이 너무 심하면 어떡하지. 아이엘츠 시험 준비를 예전처럼 여유부리듯 하다가 또 충격적인 점수를 받으면 어떡하지. 마지막 점수가 나왔던 날, 우리 모두 예상하지도 못한 점수로 충격을 받았었다. 피말리는 상상과 온갖 가정을 또 겪어야한다니. 무식이 용감하다고 그땐 용감하게 시험을 봤지만 이젠 두려움이 커졌다. 실패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남편도 나도 지금 두려움이라는 덩어리 앞에서 한것 쫄아있는 중이다. '이번에도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그냥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다. 또 안될것 같다는 느낌, 그 구덩이에서 나와야 할텐데.

이런 생각은 '꼭, 반드시, 무조건 합격해야 된다'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이 있을 거고 실력이 부족하면 더 쌓으면 되는 법인데. 마치 인생의 큰 풍파가 온 것같이 본인 혼자만 요동치고 있는 꼴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떨어지는 게 뭐라고. 안 풀리는 게 뭐라고. 잘 안되면 어쨌다고. 살아야지.

내가 요즘 읽고 있는 다음웹툰, '쌍갑포차' 중

결과야 어떻게 되든 거기에 맞춰 살면 된다.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인생의 광야도 사막도 아니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탈이 나지도 않았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지난 경험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또 한걸음. 밭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햇볕을 쪼이는 것처럼 하나하나 내 몸에 익힌 동작을 내 감에 의지해서 해나가는거다. 더울 땐 그늘에서 쉬고 시원한 냉커피도 한잔 마셔가면서.

꼭 그러리라는 믿음을 버리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한다. 이렇게 되어야 잘 풀리는 것도 아니요 저렇게 사는게 정답이라고 단정하지도 않겠다. 간절하게 바라되 고통으로 바라지 않고 기쁨으로 기대하겠다.

글을 쓸 이유가 없다고 서두에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두 페이지를 다 채워갈즘 역시 뭐라도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대충 내 생각의 흐름대로 끼적여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꼭 뭐에 보탬이 되라고 효율적이자고 하는 짓이 아니다. 나 좋자고 나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니. 꼭 이렇게 하라는 법은 없다. 재밌다고 끼적이는 글. 날마다 나에게 쓰는 편지. 날마다 다짐. 이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니. 아무튼간에,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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