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일은 쌤쌤이야

역시 한번에 두 가지 일을 하면 하나는 잊어버린다. 오늘은 비자 신청 하는 날이자 남편 생일이기도 한데, 비자 신청이 조금 더 급했나보다. 아침에 눈을 떠 부랴부랴 준비해서 집을 나가,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범하게 5호선과 4호선 지하철을 타고 주한독일대사관에 도착해 출입비표를 받고, 안내데스크 앞에서 한숨 돌리며 20분을 기다릴 때도 나는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지 몰랐다. 

미리 온 순서대로 대사관 영사과에 총총총 들어가 일열로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릴 때도 몰랐다. 가장 급하고 중요한 비자 일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돌아왔을 때에야 그제서야 오늘이 남편 생일이라는 사실이 머리 속에 나타난 거다. 그냥 꾹 참았다가 미리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는 듯 나중에 생일 축하를 하면 좋았을 것을, 나는 하나도 감추지 못하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으악. 오늘 생일이었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하고 잤는데! 미안해 여보. 생일 축하해요." 낭만이 하나도 없다. 남편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아."라고 한다. 아, 너무 아쉽다. 꼭 게임에서 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뭐지? "사람은 다 똑같구나라고 생각했어"라고 남편이 말한다.

지난주 화요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남편은 그날인 줄 까맞게 잊어버리고 아침부터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나한테 면박을 당했었다. "어떻게 아내 생일을 까먹을 수가 있어?"라고 쏘아붙였던 것이 생각나 괜히 깔깔깔 웃으며 애꿎은 남편 팔뚝만 찰싹찰싹 때렸다. 내가 그으랬나아? 어머나 호호호. 우리 쌤쌤 하자고. 이번 년도 생일은 쌤쌤이야.

우리는 기념일을 참 낭만 없게도 보낸다. 기념일은 그냥 맛있는 음식 먹는 날. 그 정도로만 특별하고 기다려지는 날이다. 맛있는 음식이라는게 그나마 정해져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조금 고급지게 먹는 날. 메뉴 정하는 걸 항상 어려워하는 남편에게는 메뉴 선택의 권한을 나에게 위임하며,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날'이라고 하니 우리 둘에게 기념일은 그냥 초밥 먹는 날쯤 된다. 초밥 먹는 날은 특별한 날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반전. 올해 생일상은 초밥이 아니라 한식으로. 사진은 무월식탁의 간장새우정식.


내년 생일은 조금 특별하게 보내야지. 올해로 결혼하고 세 번째 맞이하는 생일이었는데 조금 아쉽다. 깜짝 파티같은거 해보고 싶었는데. 하긴 생각해보면, 독일을 가는 것이 결정났던 7월 첫째주 금요일. 그날 굉장히 깜짝 놀랠 일을 겪었으니 올해 이만하면 아주 특별하게 보냈다고 할 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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