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구겨진 150유로를 발견했다면

독일 생활도 어언 1년째. 남편은 이번에 3학기를 시작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함께 시작했다. 한식당에서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중이다. 주 15시간 정도 일하고 있는데 수업이 없는 목요일에 몰아서 10시간을 내리 일하고 토요일에는 대여섯 시간 정도 일한다. 

우리집에서만 활동했던 설거지 요정이 외근을 나가(??) 돈을 벌어오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주방일이 나름 재미있다고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는 것 같지만 역시 힘들어 보인다. 10시간 일하고 들어온 목요일 저녁밤은 무릎이 아프다, 손목이 아프다 여기저기서 말썽인지 앓는 소리를 냈다.

지난 수요일. 남편이 수업을 마치고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월, 수, 금요일은 남편이 오전 일찍 수업이 있어 정신없이 나가는터라 챙겨준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먹었는지, 수업은 어땠는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남편이, "헉. 땅에 돈이 떨어져 있어!"라고 당황해하는 것이 아닌가. 남편의 흔들리는 동공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구깃구깃 구겨진 돈은 무려 50유로 세 장. 150유로나 되는 큰 돈이었다.

"거기가 어딘데?" 나는 남편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학생식당에서 도서관 가는 길인데... 조금 애매해."

"본 사람 있어?" 내 꾹꾹 눌러담은 본심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 말 하면서도 입가에 숨겨지지 않는 미소는 어떡할거야.

"없어. 길에 사람이 없어가지고." 남편은 순진하게 그걸 또 대답하고 있다.

150유로냐, 양심이냐. 찰나의 순간 깊은 고민과 성찰이 두뇌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150유로면 남편이 10시간 일해서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잖아? 잠깐만. 이 돈이면 뭘 할 수 있지? 나는 이 돈의 주인도 아니면서 150유로로 뭘 할 수 있는지, 아니 뭘 살 수 있는지를 머리 속으로 굴려보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남편에게 티내지 않고 침착하게 얘기했다. "건물 안에 행정실 같은데 없을까?" 남편은 자신이 발견한 위치가 건물 앞이라고 말하기 애매하다고 답했다. 

"그럼.......... Lost and Found office 같은데 갖다줘야 하려나?" 나는 겨우 이렇게 얘기하고서 아까 150유로를 어디다 쓸 건지 고민했던 본심은 저 멀리 구겨넣어 버렸다. 남편은 그런 office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돈을 발견한 장소에 잠시 서서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 방금 뭘 한거야. 150유로에 양심을 버리려고 했구나. 그래도 장난으로라도 "돈을 얼른 호주머니에 집어 넣고 그 자리를 떠!!!"라고 남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결국 누구에게도 주지 못해서 내가 가져왔어."라고 말할 남편을 기대했다고......(말할 수 없다.)

쉽지 않죠.


한 20분쯤 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서관 근처 건물에서 분실물을 맡기는 행정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거기에 가져다주고 왔다는 것이다. 나는 잘 했다고, 아주 착한 학생이라고, 우리에게도 큰 돈이지만 잃어버린 사람에게도 큰 돈이었을거라고 남편을 크게 격려해줬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받았다 뺏긴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나중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150유로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눴을 때 남편이 고백하기를, 내가 만약 그 자리에서 주머니에 넣으라고 얘기했으면 자기도 넣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아내 말을 잘 듣는 남편이야."라며......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사실 나도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갈등을 했었거든. 

사람이 이렇게 쉽게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니. "나는 혹시 어디선가 몰래 카메라를 찍는게 아닐까 싶었어."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만큼 아무도 없는 거리, 구겨져 있는 큰 돈이 당장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런 이상할 것이 없이 너무나도 미심쩍었다는 것. 다시말해 우리 것이 되어도 아무도 몰랐을 그 짜릿한 (??????) 역사적 현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하하하. 이 글을 쓰는데도 이렇게 짜릿하다.

1유로도 아니고 15유로도 아닌, 150유로... 1유로 동전을 길가에서 발견했다면 "땡 잡았다!"면서 주머니에 아무 거리낌 없이 넣었을테고, 15유로였다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래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150유로는.... 쓸데없이 너무 크다. 그만큼 감당해야할 죄책감도 크다.

양심의 가격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정직하게 살겠다고 숱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건만 150유로 앞에서 여지없이 흔들리는 갈대같은 이 내 마음! 그래도 끝내 주머니에 넣지 않아 다행이다. (과연?) 그나저나 그 돈은 주인한테 잘 돌아갔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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