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산책하고 영화보기

햇살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책상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콩 밭에 가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집에 있으면 예의가 아니지. 햇볕에 대한 예의. 나는 즉시 옷을 챙겨입고 엉크러진 머리를 정리한 뒤 바깥으로 나갔다. 목을 축여줄 물통과 간식으로 먹을 바나나 하나도 야무지게 챙겼다. 우반을 타고 넓은 공원으로 갈 생각이다.

공원은 보수공사를 하는지 약간은 분위기가 산만했다. 원래는 햇살에 반짝여야 할 호수가 물이 다 빠져 스산해보인다. 물갈이를 하는 중인지 몇 주 전부터 물이 모두 사라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작정 걷기를 시작한다. 뭔가 음악이나 팟캐스트라도 들으면서 걷고 싶었는데 이어폰을 놓고 왔다. 어쩔 수 없이 묵묵히 걷고 있는데, 이것도 꽤 나쁘지 않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하며 곁을 지나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내 곁을 오고갔다. 햇살은 정면으로 나를 비추고, 가을색 옷을 입은 나무들은 빛에 반짝거린다. 참, 또 빠질 수 없이 관찰할 수 있는 귀여운 친구들은 바로 오리들과 새들이다. 고개를 몸통에 푹 박고 선 채로 낮잠에 빠진 오리들은 너무 사랑스럽다. 참 희한하게도 자네. 아무도 그 평화를 깨지 않는다. 모두가 묵묵히 걷고 뛰며 햇살을 즐길 뿐이다.


걷다보니 어느새 중앙역까지 와버렸다. 공원은 직선거리 4km가 넘는 엄청나게 큰 규모다. 오늘은 왼쪽 길로 걸었지만 다음 번엔 오른쪽 길로 걸어봐야지. 중앙역에 와서는 사람들 사이로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녔다. 50분을 안쉬고 단숨에 걸어서인지 다리가 욱씬욱씬거린다. 길가 벤치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며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가 아쉽네. 내친김에 혼자서 영화라도 봐볼까. 

독일에서 영화관은 딱 한번 가봤다. 영어로 상영하는 상영관에 가서 남편과 쥬라기 공원(?) 최근편 같은걸 본 것 같다. 독일어로 하는 영화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영화관 앞에서 잠시,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건가 망설여졌지만 한번 해보기로! 시간은 1시 45분쯤이었는데 2시에 시작하는 영화로 선택했다. 신비한 동물사전 2로도 불리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티켓은 8.8유로.

대사는 어찌나 빠르고 말들을 많이 하는지 내용의 절반도 이해를 못 한 것 같다. 영상을 보면서 추리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내용도 잘 이해가 안되고 또 왠지 구성도 엉성한 것 같아 절반부 이후부터는 집중이 잘 안됐다. 따뜻하고 나른해서 졸리기까지.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쯤엔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집에 돌아와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일러바쳤다. 혼자서 산책하다 시내까지 가서 영화까지 보고 왔다니. 꼭 나혼자 외국여행을 다녀온 것 처럼 낯설고 신기하다며 재미있어한다. 아기가 나오면 당분간 자유는 어려울테니까. 남은 네 달의 시간 만큼은 자유를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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