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카리타스 임신 지원금 신청 후기

정확히 말하자면 Bundesstiftung "Hilfe für Mutter und Kind" 신청 후기

'카리타스에 문의를 해보면 임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은 임신 중기무렵부터 몇몇 한국인 지인들을 통해 듣게 됐다. 남편이 학생이고 재정상황이 어렵다고 잘 호소하면 대게는 자격이 되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그런데 나는 도통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거나 구글에서 Schwangerschaft, Karitas같은 검색어로 잘만 찾아보면 관련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텐데, 이게 무슨 심보인 지 모르겠다.

작년 11월, 다이어리 첫장에 '앞으로 할 일'을 적으면서 <카리타스 지원금 알아보기>라고 호기롭게 적어두긴 했지만 정작 진심으로, 간절하게 알아 볼 마음은 먹지 못했다. 이 심리는 무엇인고... 짐작해보건데 독일어로 뭘 또 알아봐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걸 알아보게 되면 상담받는 약속도 잡아야하고 (전화를 해야하고) 서류도 준비해야하고, 직접 가서 대면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그 묘한 긴장감과 막연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기를 기약없이 하다가 어느날, 어느 순간, 생활비가 쪼들려 가지고 있던 값나가는 물건들을 E-Bay에 올렸을 때, 남은 돈으로 얼마나 살 수 있나 머릿속으로 가늠하지만 도저히 계산이 안 됐을 때, 내 발등에 불이 딱 떨어졌고 나는 누군가 채찍질이라도 하는 듯 불이 올라 전투적으로 알아 보기 시작했다. Yes. I'm on fire...

일단은 소심하게 이메일 문의로 첫 걸음을 내딛어 보았다. 나는 누구고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재정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상담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아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두 번째 용기다. 이놈의 전화 울렁증은 여전하지만 다행히 순조롭게 예약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그렇게 테어민까지 또 10일 남짓을 기다리고... 드디어 당일이 되었다.


길고 긴 대화

전화로 예약을 잡을 당시 담당자는 나에게 다음의 서류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무터파스, 여권(체류 비자), 남편의 재학증명서, 집계약서와 월세, 전기세, 가스비 등등의 비용을 지불했다는 1년치 영수증. Nebenkosten(전기세, 가스비 등등)과 월세 지출은 통장 내역으로 갈음할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가능하다고 해서, 상담일자 며칠 전부터 꼼꼼하게 준비해뒀다. 1년치 통장내역을 복사해서 해당 부분에 각각 다른 색깔 형광펜으로 보기좋게 체크해두는 정성을 쏟았건만.... 무슨 일인지 정작 당일에 요구하지는 않았다.

약속한 수요일 아침 9시가 되어 카리타스 임신관련 상담을 해주는 담당 기관으로 찾아갔다. 안내데스크의 행정직원에게 테어민을 알리고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렸다. 나를 담당하는 Frau가 나를 픽업했고 악수를 나눈 뒤 함께 상담사의 사무실에 들어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직원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분이었는데 굉장히 친절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내가 걱정이 된다고 풀어놓은 첫 번째 주제는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출산하는 게 불안하고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상담사는 어떤 점이 특히 어렵게 느껴지는지 구체적으로 물었고, 나는 출산 상황에서 간호사가 하는 중요한 말을 잘 알아 들을 수 있을지, 내가 해야 하는 표현이 적절히 잘 전달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상담사는 내 얘기를 듣더니 이미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사실 출산 할 때는 말이 별로 필요 없다는 얘기도 웃으며 덧붙여주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재정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사실 그대로를 얘기했다. 우리는 처음에 2년을 생각하고 왔고, 아기가 생겨서 너무 감사한데 그 덕분에 남편이 휴학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생활 기간이 더 늘어났다. 이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대비해서 여러 아기용품들을 구입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생활비도 부족한 상황이라 어렵다는 것. 그래서 최근에 남편이 한식당에서 미니잡도 시작했다고도 (솔직히) 얘기했다. (수입이 있으면 불리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여기까지 얘기를 풀어놓으니 상담사는 우선 나와 남편의 체류 비자를 보자며 가지고 있는 서류와 대조하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상담사는 Job Center에 등록하면 더 많은 금액을 체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며 나는 등록할 자격이 된다고 설명해줬다. 하지만 몇몇 직원과 통화해보고 조언을 구한 결과, 그렇게 신청 해서 재정 지원을 받게되면 다음 비자 연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최악의 경우 독일을 떠나야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 그건 안 하기로 결정. 본래 의도했던 카리타스 지원금만을 신청하기로 결론을 지었다.

지원 신청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서류를 채워 나가는데 계좌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금액 부분에서 조금 삐끗했다. 보통 우리와 같은 유학생 부부의 경우 한국에서 월에 얼마씩 지원을 받는다는 계좌 내역을 증빙하면 될 텐데, 우리는 애초에 돈을 마련해 와 독일 계좌에 넣어두고 매월 까먹는(?) 형식이라 계좌에 보유 금액이 (비교적) 많고, 따라서 심사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얘네들 계좌에 돈도 많은데 왜 돈이 더 필요해? 철회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 돈을 가지고 우리는 내년 3월까지 최소 버텨야 한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긴 했지만... 그 상담사가 신청서에 그렇게 잘 적었을지, 그게 또 잘 반영이 될지 모르겠다. 이 돈으로는 3월까지는 커녕 올해 7월까지도 간당간당한데... 에휴.

긴 상담을 거쳐 천 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아주 드문 사례들(혹은 간증들)을 들으면 적게는 600유로에서 많게는 2천유로까지 받기도 한다고 한다. 상담 중에 최대한 어필을 한다고는 했는데 내 얘기를 들은 결론이 '천유로를 지원해 봅시다'라니. 아쉽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더 받으면 좋을텐데, 하는 욕심과 심사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그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중이다. 

지원금 신청서 작성 이후에도 임신 전에 해야할 checklist, 후에 해야 할 checklist 설명을 들으며 점검도 했고, 슈투트가르트 내 큰 병원 리스트도 받아왔다. 이런 저런 설명까지 덧붙여 장장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긴 상담을 마치고 건물을 나오자 진이 쏙 다 빠져버렸다. 뭔가 큰 걸음을 뗀 기분이었다. 이만하면 잘 했어, 스스로에게 격려를... 결과는 2주 뒤에 나온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시도는 해 본 거니까. 잘 기다려봐야지.


* 구글에서 Bundesstiftung Hilfe für Mutter und Kind 와 함께 본인의 지역 이름을 검색하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Baden-Württemberg주는 다음 페이지.(https://sozialministerium.baden-wuerttemberg.de/de/soziales/familie/rat-und-unterstuetzung/landesstiftung-familie-in-not/)
본인이 적극적으로 알아서 찾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독일에서는 누가 밥을 떠먹여주지 않는다는 거... Man muss aktiv 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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