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는 그대로인데 내가 조금 바뀌었다. 하니는 여전히 잘 먹기도 하고 먹다가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예전같았으면 짜증의 모든 원인을 나로 돌렸을 것이다. 내 모유가 부족해서, 결국 나 때문에. 이런 생각의 연결고리에 갖혀 아이의 반응에 전전긍긍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유가 하니에게 부족했던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분유와 함께 혼합수유를 해오고 있는 50여일 동안 아이는 전보다 더 배부른것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하니는 여전히 모유만 먹었을 때처럼 먹다가 짜증을 내거나 먹을 것에 관심이 없거나 먹다가 울기도 한다. 아이가 충분히 먹을 양의 분유를 타서 물려 주는데도 절반도 못 먹고 버리는 것이 우리에겐 일상이다.
이제 양의 부족이 아이의 거부나 울음에 원인이 되지 않는 것이 확인 되었다.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해져 아이가 왜 우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트림을 시켜줘야 하는지, 잠시 안아주어 흥분을 가라앉혀야 하는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니까 그냥 놔둬야 하는 건지,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됐다. 결국엔 이것도 저것도 안되어서 80ml나 100ml만 먹고 한 텀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이 양은 하니의 개월 수 아이들이 한텀에 먹는 양에 절반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다음 끼니가 있으니까.
여러번 아이와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어떤 감각같은 것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출산을 막 겪고 이래저래 적응할 것이 많아 혼란스러웠을 당시에는 나는 도대체 그 감각이란 것이 언제쯤 생기는 걸까 궁금했었다. 아이의 배고픈 울음과 졸린 울음을 어떻게 구별할 것이며 배앓이나 성장통 울음은 어떤 울음인지. 지금 갖고 있는 감각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감각이라는 것은, 오늘은 아이가 힘들어도 내일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도 같은 느낌이다.
이런 감각이 단단하면 단단할 수록 뜻밖에 찾아오는 위기의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로서 내가 내리는 결단과 아이에게 해주는 케어가 옳고 적합하다는 생각. 요 몇일간은 우리에게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기에 감히 지금 이 시점의 우리는 잘 해내고 있다고 얘기 해 본다. 이런 감각이 훗날의 폭풍우를 견디는 내적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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