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물세폭탄을 맞다

2년 3개월이 지나 이제야 날아온 편지

이틀 전쯤 온 편지는 아무렇게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Betriebskosten/Nebenkostenabrechnung. 이름도 긴 이 단어는 번역하면 "관리비/집세 외 잡비 정산".

문제의 정산서.

우리가 이 집에 살기 시작한 것이 2017년 9월부터인데 무려, 2년이 지나서야 2017년 9월, 10월, 11월 이렇게 3개월간의 비용이 정산되어 날아온 것이다. 금액도 터무니없고, 기간도 너무 옛날이라 뭔가 잘못되었겠지, 쓴 사람이 헷갈렸겠지 하고 책상 위에 펼친 채로 둔 편지를 오늘에야 진지하게 읽을 마음이 생겼다.

첫 장부터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거주자의 물 총 사용량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화장실과 주방의 물 계량기 사진을 찍어두었던 것이 생각나 얼른 핸드폰 앨범을 뒤졌다. 편지 속 숫자와 얼추 맞아 떨어졌다. 이 편지 내용은 우리 집 것이 맞았다.

 

계산서에 있던 내용들

첨부된 계산서에는 우리가 쓴 총 물 사용량과 그에 따른 물세, 물 사용량에 따른 생활 하수비, 건물 계단 전기세, 쓰레기 버리는 비용, 굴뚝청소비, 바깥뜰 관리비, 건물 보험비, 계단 청소비용이 상세히 고지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매달 60유로씩 관리비와 물세의 명목으로 하우스 마이스터에게 돈을 내고 있었는데 거기에 물세가 포함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편지에 따르면, 관리비와 집세 외 잡비는 이미 (3개월에) 400유로선이며 우리가 냈던 60유로 x 3달의 가격을 뺀 나머지 금액이(220유로) 초과되었으니 30일 안에 송금해야 했다.

계량기 숫자 적는건 생활화 해야 할듯...(사진출처: https://www.freiepresse.de/vogtland/auerbach/wasserrechnung-manchmal-lohnt-der-einspruch-artikel10445412)

그야말로 얼이 빠지고 말았다. 2017년 9월~11월 요금이 이제야 정산되어 온 것도 황당한 일인데 그 가격이 어이가 없다. 3개월에 220유로를 추가로 내야한다면, 전혀 정산 되지 않은 2018년과 2019년, 2년간의 요금은 어떻게 되는 거지? 계산으로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냈던 60유로의 돈에는 물세 따위 전혀! 전혀!!! 포함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집에 사는 2년 4개월 동안 아직까지 물세 한 번을 내지 않았다니? 거기에 매달 냈던 관리비는 턱없이 적어 매달 24유로씩 추가로 더 냈어야 했다. 

 

물을 쓰는 비용에 물을 버리는 비용까지. 

물세 비용에서 충격을 한번 받고, 항목 중에 있는 "생활 하수비"에서 한번 더 깊은 충격을 받았다. 물세도 물세인데, 물을 버리는 돈까지 계산되어 있던 것이다. 물 사용량 곱하기 얼마. 이 가격은 물세의 거의 절반이 넘는다. 그동안 물을 헛되이 흘려보냈던 모든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없이 많은 샤워... 샤워기 물을 틀어놓고 샤워했던 기억들... 물을 틀어놓은 채로 설거지를 했던 수많은 날들... 손님 접대... 한국처럼 콸콸콸 물을 쓰고.. 또 낭비하고..

독일에서 물은 정말 아껴써야 했다. 왜? 쓴만큼 버리는 비용도 내야하니까. (사진출처: https://www.augsburger-allgemeine.de/mindelheim/Ab-Wasserrechnung-kommt-eventuell-mit-Verspaetung-id55793251.html)

그 모든 게, 눈덩이처럼 불어 한 번에 몰아 닥쳤다. 나와 남편은 조금 겁에 질려 당장 화장실과 주방의 계량기로 지금까지의 총사용량을 계산해보았다. 계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물세만 910유로, 생활하수비는 600유로. 거기에 매월 60유로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관리비 추가 비용이 매월 24유로에 육박하여, 우리가 앞으로 내야 할 관리비의 "추가 비용"만 570유로. 이것저것 모든 것을 합치면 지금 우리가 내야 할 돈은 총 2100유로다. 한화로 계산하면 무려 280만 원. 

그런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독일에 살면 물 쓰는 것을 한국에서 쓰듯이 하면 안 된다고. 물세 폭탄을 맞게 될 거라는 얘기 말이다. 그게 어느 수준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독일생활 초반에는 물을 좀 아껴 쓰다가 결국에는 한국에서 쓰듯 써온 우리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꾸준히 내왔던 관리비(와 물세인줄 알았던) 60유로는, 부족하니 더 내야 한다던지 돈이 많이 걷혀 돌려준다던지(독일에는 이런 경우도 있다), 그런 말이 일절 없었다. 그랬기에 60유로로 이미 충분할 것이라 짐작만 해온 것이 어리석었다. 불찰이었다.

2년이 넘어서야 정산된 관리비는 월 84유로였고, 물세는 평균 53유로. 이거 참. 2년을 모아놓고 보니 280만원이라... 한겨울에 그야말로 물세 폭탄을 맞은 샘이다. 

 


 

쓰라린 연말이다. 남편은 충격을 받았는지 집 계약서까지 들고와 관리비에 해당하는 설명을 찾아보았다. 우리는 뒤늦게야 계약서에 쓰인 문장을 이해했다. 관리비는 추후 계산되어 고지됩니다, 라는 식의 독일 문장이었다. 고지 후에는 즉시 납입을 해야 한다는 말도. 계약서를 꼼꼼히 보고 마음의 준비를(돈의 준비를) 해 놓지 않은, 이번에도 우리의 미숙함이 드러났다. 독일에 살기 시작한 당시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했던 탓이다. 

남편은, 물세가 50유로 선이었고 그걸 2년동안 안 냈으니 이제야 지불하는 거라고 생각하자며 쓰라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도 물세는 안 냈으니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한꺼번에 내라고 하니 다소간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적어도 1년에 한 번만 정산을 해줬어도 그다음 해의 물 씀씀이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 놓고 살았는데, 이렇게 낭비하고 살았는데... 해외 살이는 정말이지 그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애초에 꼼꼼히 보지 않은 우리의 실수가 크다. 지금부터 어떻게든 앞으로 지불해야 할 2천 유로를 만들어야 할 것이고, 앞으로는 샤워도 적게 하고 설거지 물도 받아서 하며 최대한 물을 아껴 쓰고 또 아껴 쓰자는 다짐으로,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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