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코로나19 견뎌내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일 땅을 맹렬히 휩쓸고 있다. 날마다 확진자 수는 정점을 찍어가고 있고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제한의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어제는 국경을 폐쇄했다면 오늘은 일부 공항이 문을 닫는 식이다. 학교와 유치원은 4월 20일까지 문을 닫았고 오늘 뉴스에 따르면 독일의 모든 주에서 슈퍼와 약국과 같은 필요 상점을 제외한 극장, 술집, 콘서트홀, 박물관, 체육관 등 사람이 모이는 모든 장소를 폐쇄하는 초 강수 조치를 두었다. 레스토랑도 저녁 6시 전까지는 문을 닫아야 한다.

1월 말에서 2월에는 독일 내 확진자 수가 적었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것이 무섭다기보다 은근한 인종차별이 거슬려 바깥 외출을 자제했다. 중국이 점점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한국에서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던 2월 중순에는, 하니를 유모차에 태워 바깥 외출을 하던 우리에게 한 독일 할아버지가 "으, 히나 비루스(중국 바이러스)"라며 면전에 뱉고 간 적도 있다. 뭐라고 한 마디 뱉기도 전에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말 한마디라도 뒤통수에 갈겨줬으면 좋았을 것을, 몇 번이고 상황을 되풀이해볼수록 기분은 더 나빠질 뿐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중국 유학생이 폭행을 당했다더라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으며 씁쓸함을 꾹 삼킨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감염이 걱정이 되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슈투트가르트는 이미 확진자 수가 놀랍게도 280명을 넘었다고 하고 (어제와 비교했을 때 무려 130명이나 늘었다) 집 근처 차로 10분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에서도 확진자는 이미 120명이 넘었다. 이 숫자는 내일이면 또 갈아치워 질 것이다. 현재 시간으로 독일의 확진자는 벌써 7천 명이 넘었다. 여기저기서 미쳐 업데이트 되지 않은 숫자 까지 합산하면 ... 상황은 이보다 더 안좋을 수도 있다.

3월 16일 저녁10시 기준. 며칠째 매일 천명 이상 확진자 수가 늘고 있다.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은 사재기 현상으로 폭발하는 중이다. 쌀과 파스타, 휴지 (!!!) 밀가루, 이런 품목들은 어느 마트에 가도 매대가 휑하게 비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품목은 휴지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 독일 사람들도 휴지 사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휴지를 사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일단 나도 사놓고 본다. 오늘도 아침 일찍 슈퍼에 가서 아직 진열도 되지 않는 휴지를 뜯어 10개들이 한 묶음을 쟁취했다. 내 뒤로는 아침부터 두눈이 혈안이 되어 장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텅텅 비어버린 휴지코너.
감자가 주식인 독일사람들에게 감자 사재기도 심각하다.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사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딜 가도 구할 수가 없는 것이 마스크다. 2월에 아마존을 통해 마스크를 검색했을 때는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 아마존이 장난을 치나 싶었다. 코로나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은 그 가격의 두배, 세배를 주고도 살 수 없다. 손세정제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dm이나 rossmann에 죽치고 앉아 물건이 채워지기를 기다리지 않는 이상 나같이 아기 있는 엄마에게 손세정제는 닿을 수도 없는 거리에 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하니가 태어났을 때 하나 사둔 것이 있어 그걸 아주 아주 조금씩 아껴서 사용하는 중이다. 다 없어지기 전에 코로나가 지나가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그건 어려워 보인다.

남편에게 학교를 가는 것도 일주일은 중지해달라고 부탁했다. 논문 실험을 위해 매일매일 실험실에 출근해야하는 남편이지만, 요즘은 개인이 조심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이동 자체를 자제해야 할 비상시국으로 보인다. 바이러스가 너무도 빨리 퍼지고 있는데,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감염 경로 따위를 전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저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당분간 집에 머물며 스스로 조심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 보인다. 앞으로 이 시국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모르겠지만 이 따사롭고 기분 좋은 봄을 빠른 시일 내로 걱정 없이 만끽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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