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아껴뒀던 영화 WILD를 보면서 시종일관 내 시선이 꼳혔던 것은 주인공 셰릴의 다리였다.
처참하게 무너진 삶, 엄마와 가족, 남편을 모두 잃고 삶의 끝에서 배낭하나 짊어진 그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이하 PCT)로 혼자 떠난다.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4,285km. 그 절대 고독의 여정동안 온갖 고통과 외로움을 오롯이 감내한 다리, 끝내는 종주한 셰릴의 다리는 그의 삶의 의지요 처절하고 끈질긴 생명이었다.
영화의 초반부. 짐을 모두 싸고 주인공이 배낭을 드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 몸뚱아리만 한 비대한 배낭에 눌려 일어나지를 못하다가 무릎을 꿇고, 탁자를 짚고 일어선 다리. 위태롭지만 종주는 그렇게 연약한 무릎을 잡으며 시작된다.
인적이 없는 황량한 사막과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물이 없어 웅덩이 썩은 물을 정수해 마시기도 하고, 짐승과 사람의 위협에서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이 미친 시도를 도대체 왜 시작했는지 스스로를 욕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버틴다.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겠지. 스스로가 선택한 광야, 온갖 고통과 외로움이 존재하는 곳에서 한마디로 지랄 발광을 하면서도 버틴다. 이제는 근육이 생겨 튼튼해진 두 다리로. 걷고 또 걷는다.
많은 감정을 담아낸 리즈 위더스푼의 맨얼굴.
사서 고생을 왜 하나. 편한 길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셰릴에 이입되면서 그가 걷는 걸음의 무게가, 삶을 살아가는 의지가 뒤엉켜 위대한 족적이 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자기 몫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거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박군과 얘기를 나눴다. 사천킬로가 넘는 거리는 안될말이겠으나 우리도 우리몫의 짐을 지고 걸어보자고 말이다.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이 문득 떠오르면서 내년에 꼭 가 보자고 입을 모았다. 왜 그런 미친짓을 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원래 산다는 것이 그런거 아니겠는가. 왜 사냐고 묻냐면 그저 웃지요.
셰릴이 PCT를 돌면서 방명록에 남긴 명언들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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