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8. 11:49 2017년 한국
글쓰기가 조금 시들해진 건 사실이다. 더이상 설렘이나 기대감이 있기보다는 의무감이 더 큰 편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이니 어떻게든 자리에 앉자, 공책을 펴자, 펜을 잡자고 스스로에게 얘기한다. 만년필의 잉크가 얼마나 남았는지 괜히 빛에 비춰본다. 그래도 이 자리는 억지로라도 앉는다. 한줄만 써도 돼. 많이 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잊어버리지 않고 오늘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해. 이렇게 주문을 건다.걱정하는데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진 않은데 실상 많은 시간을 염려하는데 쓰고 있다. 남편이 중압감이 너무 심하면 어떡하지. 아이엘츠 시험 준비를 예전처럼 여유부리듯 하다가 또 충격적인 점수를 받으면 어떡하지. 마지막 점수가 나왔던 날, 우리 모두 예상하지도 못한 점수로 충격을 받았었다. 피..
2017. 6. 17. 11:41 2017년 한국
뭔가 대단한 것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그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괜히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다가 만연필의 잉크를 바라본다. 발등을 긁고 다시 생각하다가 물 한모금을 마신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치고 만다. 에잇, 평범한 이야기나 쓰지 뭐. 다른 부부들은 시간이 많을 때 무얼 하는지 늘 궁금했었다. 우리는 캄보디아에 있을 때 상대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엔 매일매일 뭘 해야할지 몰랐다. 시간이란 것이 아무리 흥청망청 써도 그 다음날이면 정확하게 원 상태로 다시 채워졌으니까. 시간을 다 써도 다시 채워지는 게 신기해서 아무렇게나 시간을 보냈다. 이유가 안되는 논리지만 냉장고 안에 먹을 게 아무리 많아도 그 다음날 똑같이 다시 채워지는 원리와 같았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시간을 해치웠..
2017. 6. 16. 22:26 2017년 한국
이메일을 너무 기다렸더니 꿈까지 꿨다. 우리는 지금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어젯밤 4개의 다른 메세지가 오는 4번의 다른 꿈을 꿨다. 그 정도다. 거의 마지막 희망이자 바람이었으니까. 아이엘츠 6.5는 못 맞았고 그 다음엔 뭐? 6.0으로 비빌 언덕을 찾아보는 것. 네덜란드는 너무 늦었고 덴마크는 안되는 것 같다. 남편이 샤워하는 동안 이메일이 와서 열어보니 안된단다. 6월 15일까지 점수를 내지 않으면 바로 자동 입학 취소가 된다고.바보. 6월 15일까지 이제 2주도 안남았는데(글 쓰는 시점은 6월 2일이다) 갑자기 6.5가 될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매주 시험을 보기도 돈이 없고. 아, 결국엔 이렇게 되는 건가. 이따 남편이 나오면 뭐라고 상의를 해야할까. 우리는 정..
2017. 6. 7. 08:00 2017년 한국
5월에서 6월로 달이 바뀌었다. 화창하게 빛났던 5월이 '6'이라는 숫자를 앞에 단 순간 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꽃다운 여인이 되었다. 한국에서 맞이하는 6월은 참 맑고 화창하고 아름답다.프리레틱스 2주차 첫번째 날. 오늘은 상체 중심인지 팔굽혀펴기가 그렇게도 많았다. 덕분에 나는 펜을 잡고 글을 쓰는 것도 힘들게 됐다. 자꾸 부들부들 떨려서 글을 쓰는건지 글자를 그리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다고 팔굽혀펴기를 잘 해낸 것도 아니다. 나는 도무지 한 개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40번을 10번씩 띠엄띠엄 나눠서 했는데 엉덩이는 바닥에 둔채 팔만 굽혔다 폈다 했을 뿐이다. 누가 보면 '저 사람 운동하는거야 기도하는거야 뭐야'라는 소리가 나올법한 옹삭한 동작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마저도 횟수가 넘어갈수록..
2017. 6. 6. 08:00 2017년 한국
유리공예가인 마리는 "인간은 생산적이어선 안 돼. 쓰레기나 만들 뿐이니까"라고 말했다. 본인은 실로 아름다운 유리공예품을 만들면서도 이런 말을 한다. "난 불가연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거야." 자각있는 예술가는 훌륭하다.- , 사노 요코 이 할머니 마음에 든다. 가장 절망적이고 외로운 상황에서도 해학은 피어오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 작가의 글은 덤덤해서 더 와닿는다. 하나 둘씩 잊어버리는 자신의 치매를 발견하고 '있는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친구와 통화를 하면 '이것도 까먹었고 저것도 이젠 기억이 안 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해탈의 경지이다. 내 나이 스물 아홉인데 60대, 70대의 나를 그려본다는 건 조금 받아들이기 어..
2017. 6. 5. 22:50 2017년 한국
프리레틱스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프리레틱스는 맨몸 운동이다. 도구가 필요 없고 오로지 자신의 체중을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이제 정식으로 시작한지 이틀째가 됐다. 첫째날과 오늘 공백이 있는 까닭은 중간에 발목을 다쳐서 쉬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분량은 힘들지만 과하지는 않았다. 토가 나올만큼 힘들게 시키지는 않는 듯 하다. 한 달간 꾸준히 운동을 해보고 얼마나 성과가 있는지 보고싶다.막연한 두려움이 다시 찾아왔다. 내가 맡아서 진행해야하는 워크숍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대한 꼼꼼하게 준비하려고 하는데 걱정이 쉬이 줄지가 않는다. 워낙 모두까기 분들이시라 하나하나 맞춰서 진행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하고.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물고 끊임없이 나타난다. 반복되는 막연한 두려움. 나 스스로 감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