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 되돌아보기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된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당시에는 분명히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기억의 창고 속에 묵혀두면 힘든 부분은 증발이 되어버리고 좋았던 기억만이 선명히 남는 것이다. 밤 10시. 소파에 길게 누워 하릴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평소라면 쏟아질법한 잠은 달아나버리고 과거의 어떤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때는 졸업 후 막 현장에 투입됐던 2015년 3월. 음악치료사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처음 세션을 시작했던 때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은 장애아동센터에서 세션을 했고 나머지 세 번은 재활센터 연구원으로 재활 세션을 했었다. 이중 화요일 목요일, 장애아동과 만났던 일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40분 세션과 10분 부모상담. 쉬는시간 없이 이어진 하루 7번의 세션. 3평 남짓한 세션실에서 40분을 채우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그 시간동안 아이들은 온전히 내게 주어졌다.

나와 세션을 했던 아이들의 얼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아이들. 어떤 아이는 내가 피아노를 치면 귀를 틀어막고 자신의 머리를 때렸고, 어떤 아이는 세션실에 들어오면 구석으로 들어가 늘 양말을 벗고 소매를 물어 뜯었다. 20살 자폐 1급이 있는 청년은 과일모양으로 된 쉐이커를 좋아했었는데 내가 노래를 부르면 따라 불렀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만났다. 벨 소리를 유난히 좋아했던 아이, 웃는 모습이 예뻤던 아이. 어림잡아 생각해보니 15명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만났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어스레한 기억

* * *

그때 나는 무슨 노래를 만들어 썼더라. 그 부분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헬로우송, 굿바이송은 희미하게 생각이 나는데 세션때 매 회기마다 불렀던 노래가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왜 일까. 그때 불렀던 음악은 불안함이 더 크게 묻어있어 좋지 않았던 기억과 함께 증발해 버렸을까.

스물일곱의 나는 불안했었다. 이 아이들이 치료실에 들어오고 나가는 순간까지 내 손에 맡겨진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만했고 아직 스스로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접근해야 할지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나는 세션 중에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부모상담 때에는 부모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얼룩져 있었다.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치료 서비스가 전문적이기는 한지 의문이 들었고 매주 한번 진행하는 세션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하루가 마무리되면 다음주는 달라져야 할텐데, 하는 탄식과 함께 아이들의 모습은 깨끗하게 잊혀져버렸다. 일상으로 회피해버린 것이다. 여지없이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돌아오면 다시 좌절. 이런 일들이 반복됐다.

나의 모습을 보면서 치료사로서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치료사는 나 같지는 않겠지. 무엇보다 아이들을 계속 생각하고 눈에 밟히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밟히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까지 2년가까이 되는 공백의 기간동안 나는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았다. 어쩌면 뭐든지 어렵기만 했던 '나'를 떠올리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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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불안과 의구심으로 가득한 기억 속에서도 한 가지 선명하게 반짝거리며 떠올랐던 것은 아이들의 눈이다. 신뢰가 쌓인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선한 눈맞춤. 악의없이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눈.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이 있었다. 이 아이와 내가 이 공간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 아이는 나를 의지하고 있다. 이 아이는 나를 위로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듣고 노래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작은 기적이다.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때 마주했던 눈망울이 떠오르자 다시 그 눈을 마주하고 싶다는 용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사그라들지 몰라 스스로 장담할 수도 없는 연약한 용기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괜찮다. 불안함과 성급함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나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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