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30분 글쓰기:: 11월 7일 - 나의 일기장 역사

   몰스킨 한정판 2017 플래너가 왔다. 위클리라 생각보다 두께가 얇았다. 원래는 내것이었어야 할 노트를 남편에게 양도했다. 남편도 마침 플래너가 필요했던터라 잘 쓸 것 같다. 나는 원래 이런게 생기면 이름도 적고 정보같은것도 적고 가족들 생일도 적고 공휴일도 적고 난리가 나는데. 남편은 내년에 뜯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을 하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비닐을 뜯어 몇 장만 구경하고는 도로 비닐 속에 넣어버린다. 본격적으로는 내년에 쓸 예정이란다. 참 다르다는게 신기하다.

남편에게 넘긴 몰스킨 2017 한정판


   내 것으로는 곧 호보니치 테쵸 A6사이즈 플래너가 올 예정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커버는 파인애플 노랑색으로 했는데 암만 생각해도 잘 고른 것 같다. 매해 새로운 커버로 호보니치를 꾸미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이 커버로 꾸준히 써볼 생각이다. 노란색이 실증이 난다면 비닐커버 안에 엽서를 넣어서 색다른 느낌을 줘야지. 그런 생각도 하는 중이다.

내가 주문한 호보니치 테쵸 오리지널(A6)과 파인애플 노란색 커버

호보니치 테쵸 montly 페이지. 나는 sunday start로 주문했다.


   완구류나 공책같은 것은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건 중학교 1학년 때. 아, 그 이전에는 친한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기도 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보라색 하드커버였다. 거기에 좋아하는 남자애들 이름도 적어놓고 하루 일과를 시간순으로 적거나 하면서 공간을 채워갔다. 

   중학교 1학년 때 쓰기 시작한 일기장도 주황색 하드커버였다. 내가 무슨 돈으로 그걸 샀는지 기억이 안나는 걸 보니 당시 고3이였던 친오빠의 버려진 노트쯤 됐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소풍가기 전 처음으로 인터넷 옷 구매를 해봤는데 그때 내가 주문한 옷은 밀리터리 후드 집업과 무릎위로 짧게 올라온 밀리터리 치마였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걸 샀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런 옷들을 샀다고 적는 것을 시작으로 내 일기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일기가 일기가 아니였고 주기나 월기쯤 될 때도 있었다. 꾸준함이 부족해서 내 첫번째 주황색 노트는 중1부터 고3까지 무려 6년간의 기록을 모두 담고도 뒤에 몇장 빈공간이 남았다. 스무살이 되었다는 게 너무 특별해서 공책도 새 것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무살이 되고부터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빨간색 배경에 하얀 점들이 빼곡히 박힌 하드커버를 쓰기 시작했다.

   아, 고등학생때 썼던 교환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한명과 노트 한권을 거의 다 채웠다. 내가 글을 쓰고 이런저런 그림이나 사진을 오려 붙여 꾸미면 그 다음에 친구가 내가 썼던 글에 코멘트를 달아주기도 하고 친구가 몇 페이지를 다시 꾸며 나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는 찢어서 노트에 붙이기도 하고. 나는 시집을 잘 찢는 습관이 있는데 이때부터 인 것 같다. 우리가 좋아했던 류시화 시인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내가 얼마나 찢어댔는지 남아나질 않는 정도였으니.

   대부분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가 이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같은 대답할 수 없는 고민들. 그 고민들에 대한 위로와 답은 미래의 우리가 적어주는 것이다. 몇달 뒤 고민의 흔적에 스스로가 코멘트를 단다. 괜찮다고, 다 잘 될 것이라고. 그 노트는 불안의 시기를 지나는 나와 친구에게 안정제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시간을 들여 축적된 기록은 회복의 힘이 있었다.

   스무살이 되고부터 쓰기 시작한 빨간 도트 커버는 나의 컨티넨탈싱어즈 도전기와 유럽컨티 도전기를 담고 있다. 투어하던 시절 나는 하루에 한번씩 꼭 기록하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날마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아있다. 유럽컨티에서는 친구들이 그 일기장에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이십대의 고민과 불안, 애씀의 흔적이다. 그 노트는 4년간 나와 함께했다.

   그리고 스물넷의 시작. 몰스킨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날마다 쓰려고 애쓰지 않아서인지 벌써 5년째이다. 나는 올해 안에 이 노트를 가득 채우고 내년이 되면 다른 몰스킨 노트를 주문해 채워나갈 것이다. 아, 그러고보면 나는 하드커버를 좋아한다. 빨간색도. 벌써 글을 쓰기 시작한지 40분이 흘렀다. 출근 준비를 해야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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