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세계문학 180]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상, 하 (1980)

장미의 이름은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한다고 추천한 책이기도 하다. 나 또한 몇년간 '읽을 책' 목록에만 있다가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전자책을 사고 드디어 첫장을 열었다.

움베르트 에코가 기호학자라고 하는데, 먼저 기호학이 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호학은 어떠한 개념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것에 대한 학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표징이나 징표를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는 거다. 일반적으로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도 포함되지만 비언어적인 것도 포함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주는 행위도 기호를 만들고 서로 의미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트 에코만의 기호와 상징으로 가득 차있다고 할 수 있다. 기본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은 나로서는 이 책만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 많았다. 너무 어렵기만 해서 책을 중간에 놓을까 말까도 고민할 정도였는데, 끝까지 책을 붙잡게 한 것은 범인찾기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1327년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베네틱트 수도원에서 며칠에 걸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조사하고 해결하기 위해 윌리엄 수사와 그의 시자 아드소가 수도원에 들어오게 되고 두 사람이 풀어가는 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연이은 사람들의 죽음과 함께 실마리가 잡힐듯 말듯 꽤 느린 호흡으로 하권까지 진행이 된다. 

곳곳에 눈에 띠는 것은 중세시대 수도원의 타락한 모습이다. 남성들이 서로 정욕에 눈이 먼 모습이나 수도원 내로 마을 여자들이 들어와 먹을거리를 받고 몸을 파는 모습. 아울러 어떤 지식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모습까지 어두운 교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이 그동안 특히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의 필독서로 읽혀져 왔는지 모른다. 

<장미의 이름>은 그 제목에 걸맞는 온갖 기호와 상징들로 가득차 있지만 나는 이해못할 것들은 덜어내고 이 제목만큼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장미'가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책의 일부를 통해 밝힌다.


그래서 비로소 대답하거니와,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은 그 이름을 뒤로 남긴다. 이름은, 언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다가 그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까지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 대답과 더불어, 이 이름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 해석에 대한 결론을 독자의 숙제로 남기고자 한다.... 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화자가 해석하고 들어가는 글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창조해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열린책들, 1992)

장미의 이름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고 하였지만 그 의미가 잡힐듯 말듯 잘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난 뒤, 내 생각에는 '장미'는 중세시대 화려하게 보였던 수도원과 기독교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트 에코가 밝혔듯이 우리에게 존재하다가 사라진 그 이름. 그 명성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짧은 배경지식으로 전부 이해하기에 곤란하고 어려웠던 책. 10년 뒤에 다시 읽게 되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시선이 멈춘 곳>

이제 젊은이들은 더 이상 공부하려 하지 않아 배움은 사양길에 들었다. 뿐인가? 세상이 거꾸로 걷는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여 시궁창에다 처넣고, 새들은 날지도 못하는 주제에 둥지를 떠나며, 나귀는 풍악을 잡고 황소는 어깨춤을 춘다. 이제 마리아는 더 이상 명상의 생활을 사랑하지 않고, 마르타는 더 이상 시중드는 일에 골몰하지 않으며, 레아는 불임이고 라헬은 색욕에 눈길을 번뜩인다. 뿐인가? 카토는 창가로 가고 루크레티우는 여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가짜 그리스도는 천천히 옵니다. 천천히 오되 그가 미치는 효과는 대단히 무섭습니다. 그는, 우리의 뜻밖에서 오지요. 오지 않았다고요?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요? 그렇지만 오빈다. 사도들의 계산이 빗나갔기 때문이 아니고, 사도의 계산법을 제대로 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그때까지 내가 안 바로, 서책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든 하느님이든, 책 바깥에 놓여 있는 것들만 다루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부님 말씀에 따르면, 서책이라는 것은 서책 자체의 내용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문득 장서관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쳐 서책끼리의 음울한 속삭임이 계속되는 곳,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살아있는 막강한 권력자, 만든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슬나히 살아남을 무한한 비밀의 보고인 셈이었다.

장서관이라고 하는 게, 진실을 퍼뜨리는 곳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날 때를 늦추는 곳이라고도 할 수도 있는 것입니까?

내 사부님이신 로저 베이컨의 지식에 대한 갈망은 탐욕이 아니었다. 그분은 당신의 지식을 쓰시되, 하느님 백성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쓰셨다. 따라서 그분은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은 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베노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채우고, 제 비천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지식을 갈망한다.

서책의 선은 읽히는 데 있다. 서책은 하나의 기호를 밝히는 또 하나의 기호로 되어 있다. 기호는 이렇게 모여서 한 사상의 모습을 증언하는 게다. 이를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아무런 개념도 낳지 못하는 기호를 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런 서책은 벙어리나 다를 바가 없다.

하느님의 손은 창조하지, 감추지는 않는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성자 중에서 이단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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