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세계문학 180]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몇달전 리디북스에서 열린책들 세계문학을 질렀습니다. 예전부터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리디페이퍼 이북과 엮어서 괜찮은 가격에 내놓았길래 덥썩 사고 말았어요. 한국 돌아가기 전까지 세계문학전집에 빠져 살 생각하니 마치 냉장고에 먹을 것을 잔뜩 쌓아둔 것만 같은 넉넉한 기쁨이 듭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한권씩 포스팅 할 생각이에요. 180권 모두 읽게 된다면 참 뿌듯하겠네요.


가장 먼저 읽기 시작한 책은 오늘 포스팅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빅토리아 시대 말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옥스퍼드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그때 별난 사람이었나봐요. 남자들은 모조리 검은색이나 회색 옷만 입고 다니던 시절에 오스카 와일드는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다니고 머리는 치렁치렁 길게, 단춧구멍에는 초록색 꽃을 꽂고 다녔다고 해요. 보통내기는 아니였네요. 대중의 인식에 별난사람으로 각인되었던 사건은 당시 금기에 해당되었던 동성애 사건인데요.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했던 그는 앨프레드 더글러스라는 젊은 시인과 동성애 관계에 빠지게 됩니다. 이 일로 말로를 비참하게 보내고 대중의 이미지에 별난 동성애자로 각인받게 되어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가 남인 유일한 장편소설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도리언 그레이라는 꽃미남이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홀딱 반하게 된 나머지 초상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어주겠다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 기도대로 18년이 넘는 세월동안 스무살 같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되지만 자신의 초상화가 점점 늙고 사악하게 찌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죠. 초상화를 그린 화가에게 변화된 모습의 초상화를 보여줬다가 증오심에 그를 살해하게 되고 결국 죄책감에 초상화를 찢어버리기 위해 칼을 들지만, 결국 그가 늙고 찌들은 모습으로 죽게되고 초상화는 원래 아름다운 이십대 모습으로 되돌아 갔다는 이야기 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해보니 자기 잘생긴 맛에 사는 남자가 자신의 추악한 영혼을 감추며 살다가 그 양면에 균열이 일어난 모습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눈먼 나르키소스의 결말이네요. 주제가 주제인만큼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이나 '젊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한살이라도 더 어려보이고 싶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현대 의술의 도움을 받곤 하잖아요. 아름다워지고 싶고, 날씬해지고 싶고, 어려보이고 싶고. 그런 욕망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도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할머니 세대들은 말을 멋지게 하려고 화장을 했거든. <입술연지>와 <재치>가 같이 갔던 거지. 근데 이젠 그런 것이 다 사라지고 없어. 여자들이 자기 딸보다도 열 살이나 더 젊어 보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끝이네."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만을 쫓다가 정작 영혼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꽃미남 도리안. 이 시대에, 이런 인물을 그린 오스카 와일드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요.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고, 그림을 그린 작가 바질 홀워드는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가 한 말을 생각해봤을 때 소설속 인물들은 모두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모습이였네요. 불안정한 정체성, 부유하는 정체성을 그린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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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들은 읽다가 뭔가 멋지게 느껴져서 적어두었습니다. 가슴에 와 닿는 걸 보니 이 글귀가 지금 저에게 필요한 말인 것 같네요. 젊을 때 젊음을 깨달으라는 말이 참 근사하네요. 

"아! 젊을 때 당신의 젊음을 깨달으시오. 쓸데없는 것에 귀 기울이거나 희망 없는 실패를 만회하려 발버둥치거나, 아니면 무지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저속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을 내주면서 당신의 황금 시절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당신의 삶을 사시오! 당신 안에 있는 경이로운 삶을 살란 말이오! 무엇 하나 잃지 마시오. 항상 새로운 감동을 찾아 나서시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 글귀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근사하게 와닿기를.. 다음 포스팅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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