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않는 옷들을 모두 정리했다. 완도에서 큰 박스로 6개나 짐을 받고서 좀처럼 손이 가지 않은 옷들만 따로 한 박스에 넣어 보관하던 중이었다. 거대한 짐짝처럼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그 짐을 오늘 드디어 처분한 것이다. 묵은 체증이 한번에 내려가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많은 물건이 나를 그 무게만큼 누르고 있다. 필요하지도 않고 다 하나씩 기억할 수조차 없는 자잘한 것들이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니며 무겁게 한다. 도통 쓸모가 없다. 아니 쓸모를 찾을 수 있을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가끔씩 내가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어버린다. 사기는 샀는데 그것이 매력적인 순간은 늘 짧다. 그것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기간이 지나고나면 물건은 저 기억 저편으로 묻혀버린다. 그리곤 짐이 되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짐은 또 다른 짐을 낳고 새끼를 친다. 스스로 물건이 불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돌이킬 수가 없게된다. 끊어버려야 한다. 결국은. 지금의 나처럼.
캄보디아로 떠나기 위해 1년간 살았던 신혼집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왜 이렇게도 짐이 불어나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고작 결혼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리의 살림은 뻥튀기라도 한 듯 불어나있었다. 살도 찌기는 쉽고 빼기는 어렵다고, 가진 것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곤란했다. 눈물을 머금고 우리의 덩치만 큰 짐들을 팔아나갔다. TV, 냉장고, 세탁기, 소파, 책장, 서랍장, 자전거, 스피커 같은 것들. 애증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다짐했다. 이제 사는 것을 좀 멈춰보자고. 가진 것이나 다 사용하자고.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짐을 쌀 때도 한번 크게 짐을 줄였다. 한국에서 신혼집을 정리할 때 여럼옷이란 모든 여름옷과 수건, 양말같은 잡화를 다 싸그리 가방에 집어 넣고 캄보디아로 가져왔던 것이 문제였다. 1년간 살면서 한번도 꺼내보지도 않고 입어보지도 않은 옷가지가 넘쳐났으니. 늘 입어서 해어진 옷은 버리고 잘 안입는 옷은 모조리 캄보디아 친구를 주고 왔다. 가져간 옷의 3/4를 덜고 온 것 같다. 잘 입는 티셔츠 5개, 셔츠 4개, 블라우스 3개, 바지 3개, 치마 3개, 원피스 3개, 신발 4켤레, 가방 2개. 딱 필요하고 잘 입는 옷만 남겼다. 두 대나 있던 아이패드도 기타도 한대씩 팔았다. 그렇게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보니 짐이 아직도 많다.
다시 한국짐을 정비하고 외국에 가게 된다면 여기서 더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전거 2대도 팔고, 한대 남은 기타도 이번에는 팔까 싶다. 짐이 되는 모든 것은 버리고 팔고 가볍게 가고 싶다.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겨두고. Less is more. 적은게 낫다. 적은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2017년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통을 받지 않기로 선택한다 (3) | 2017.03.30 |
---|---|
카페 일하면서 하는 인생 공부 (0) | 2017.03.29 |
우리는 요새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1) | 2017.03.24 |
심장쫄깃한 유학준비 (3) | 2017.03.17 |
행주빨기 (4) | 2017.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