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요새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서울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아니 내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잠에 드는 시간이 늦어졌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9시에 끝나는데 집으로 돌아와 씻고 아주버님 형님과 잠시 영어공부를 하고 나면 11시쯤 되기 때문이다. 잠에 들려고 누우면 일하면서 마신 커피의 영향인지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남편과 나란히 누워 수다를 실컷 떠는 것이다. 창문 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어와 방안의 불은 꺼져있지만 약간은 불그스름하게 보였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엔 최적의 공간이었다.

  어제 우리가 나눈 대화는 우습게도 유학 가는 것을 다시 뒤집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우습게도라는 표현을 쓰냐면 이미 이만큼이나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찌됐든 회사 나가는 것을 그만뒀고 해커스 IELTS 학원에 등록을 해서 다니고 있다. 나는 우연히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시작해서 6월 정도까지 일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지금 7월에 출국하는 것을 정해두고 모든 생활의 패턴과 흐름을 맞춰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남편에게 다시 생각해보자고 얘기했다. 어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단숨에 해치워버리고는 잠시 이 책의 내용에 취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하루키 작가가 선택한 소설가라는 삶이 너무 간결하고 집중되어 있어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입은 방언이 터진 듯 쉴 새 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은 대충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IELTS 선행 테스트를 보고 자신의 실력에 낙담한 남편을 위로해주기 위해 말을 꺼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첫 술에 어떻게 배가 부를 수 있을까, 공부라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적인 상태에서는 하나도 남는 게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나, 마음을 가볍게 만들 필요도 있다고 서두를 땠다.

  남편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때 남편은 지금 뇌의 불안과 존재위협 부분에 빨간불이 깜빡이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응급상황 상황이다. 영어를 잘 해야만 하나, 결과가 좋지 않는 이 모든 상황이 남편에게 큰 위험부담처럼 보였다.

  마침 어제 아침 글쓰기 주제로 나의 두려움에 대해 쓰고 나 스스로도 분석해 본 터라 이런 남편의 모습이 나와 조금 겹쳐 보였다. 나도 음악치료를 전공했지만, 그래서 힘겹게 인턴생활도 하고 연구실 근무도 하고 죽어라 뛰어다녀서 2년 안에 논문도 썼지만 이 길에 관해서는 영 확신이 없다. 뭔가 모호하고 매번 연구를 해야 하고 남 앞에 나서기를 즐겨야하고 무엇보다 일정한 프레임 없이 활동가로서 살아야하는 이 일의 운명적인 특성이 나와는 잘 맞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는 나를 상상해보면 그 모습이 와 닿지가 않는다. 어떤 면으로는 두렵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이 길을 접어두기로 했다. 이것에 반대되는 특징이 무엇인지 적어보면서. 나는 내가 기꺼이 즐겨하고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일을 하고 싶지 매번 부딪혀야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할 것 같은 이 음악치료사라는 일을 내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느라 들인 시간과 돈, 열의가 아깝다고 말한 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별 신통치도 않는 일에 내 인생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나는 내가 즐겨하는 일을 하기로 나름의 선택을 했다. 남편에게도 이렇게 말해줬다. ‘나는 당신이 신나하고 즐겨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대상을 찾아서 그 감각을 경험하면 좋겠다, 이렇게 영어구사를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에서 유학까지 가는 것은 몸에 기름을 붓고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유학을 가면 영어로 말하고 쓰고 듣고 보고 할 텐데, 심지어 논문으로 상대방까지 설득시켜야 할 텐데. 그게 괴로운 일이 될 거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처럼 느껴졌다.

  아내로서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분명 그만의 빛나는 눈동자가 나올 때가 있다. 생기가 넘쳐흐르다 못해 에너지가 밖으로 분출할 때가 있다. 그런 일을 하면 이보다 재미있지 않을까? 좋아하고 잘하는 일, 눈에서 빛이 나오고 에너지가 퐁퐁 샘솟는 그런 일을 먼저 해보면서 이 일을 할 때의 나, 이런 감각을 체득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이런 저런 말로 나는 남편을 혼란스럽게 해버렸다. , 자주 있는 일이다.

  대학원에 가면, 죽어라 고생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힘겹게 마침표를 찍으면 물론 레벨업은 확실히 될 것이다. 완장이라도 찬 것처럼, 강화 아이템을 얻은 것처럼 든든하고 힘이 나기야 하겠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내가 그것을 담을 신체적인 심리적인 그릇으로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과정에서 얻는 교훈이 적을 것이다.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한번 혹독한 대학원 터널을 지나본 나로서는 이제 섣불리 학위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주고받고도 우리는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잠을 깨워버린 것만 같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고 가야 할 길 앞에서 고민하는 일은. 부디 어렵다 생각하지 않고 소박하게, 즐겁게, 기꺼이 다음 발걸음을 떼기를 바랄 뿐이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지금 멋진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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