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감과 책임감 사이

   카페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까? 나는 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두기로 마음 먹기까지 사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뭔가에 홀리듯이 이끌리듯이 마음을 먹었다는 편이 맞다. 한 달 간의 육체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고 갑자기 (난데없이)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도 같이하는 바람에 매일 항생제를 복용해 몸에 무리가 왔던 것이 방아쇠를 당겨줬다. 4월이 시작되고 약을 먹고부터 나는 줄곧 지쳤고 힘들었다.

   나는 그만두는 것을 잘 못한다. 이번에도 마음먹기까지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3월 중순부터 매일매일 반복되는 마감 청소와 걸레질이 지쳐서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을지도. 아르바이트 하나 그만두는 것도 누르고 누른 만큼 다른 어떠한 일에 있어서 '그만 둔다'는 행위는 유난히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왜 나는 그렇게 그만두는 것을 어려워하는 가?'에 관해 생각해봤다. 관계가 깨어지는 게 두려워서일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게 싫어서일까. 여기서 내가 그만두면 그쪽에 손해가 나니까?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괴로워서? 노느니 돈이라도 버는 게 나으니까?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이번에도 아니다'고 스스로 실패감을 느끼는 것이 싫기 때문에. 이게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실패감.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얻게 되는 것이 실패의 느낌뿐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크니까. 오히려 용기와 소신이 없어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내 잠재의식 속에는 '포기는 곧 실패다', 혹은 '힘들어도 무조건 마침표는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만 같다. 이건 참말로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이다.

   어떻게 사장언니에게 말을 해야 하나 끙끙댔지만 일단 내 생각을 뱉었고, 분위기는 엉망이 됐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수습이 됐다.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도 아주 못할 짓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황이 그렇다면, 내 생각이 그렇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장님은 괴롭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내 약점을 들여다보게 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따지지도 않고 덥석 강물에 풍덩 빠지는 것 같은 내 성급함, 행동이 앞서는 성향을. 음악치료같이 붕 뜨는 일 말고 조금 '현실적인 일을 해보자고 생각하자마자 바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롭다'싶으니 그만둔다고 얘기했다. 이것도 급했고 저것도 급했다. 나는 참 급하다.

   좋은 점으로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게 훨씬 희망이 있다. 나는 앞뒤 안 가리고 속도감 있게 행동부터 하고 밑도 끝도 없는 책임감도 있다. 이번 3월의 시간들은 아주 좋은 실패의 예로 기록하고 싶다. 새롭게 배운 게 많으니까. 카페 일도 재밌었고 (특히 청소하는 법을 제대로 익혔다) 커피내리는 일도 익숙해졌고 고객을 대하는 일이 나와 꽤 잘 맞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 잘 일했고 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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