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원래 그래?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사람은 누구인지 아직까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수다를 떨려고 만났다가 불편한 질문만 잔뜩 받은 나 일지도, 혹은 '좋은 마음으로' 이것 저것 질문하다가 뜻하지 않게 내 예민함과 방어적인 태도에 불편했던 A 일지도. 내내 찝찝함과 불쾌함을 해결하지 못한채로 시간도 함께 흘러버렸고 감정만 남아 허공을 떠다니고 있다.

'결혼하면 원래 그래?'를 질문하는 의도 자체는 선하고 순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듣는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때 내 표정은 일그러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가 어떤 '그래'에요"라고 되물었다. A는 '돌리지 않고 솔직히 얘기할게'로 운을 띄웠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결혼하더니 남편 가는데로 남편 하자는데로 휘둘리는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원래 그렇게 남편의 영향을 많이 받냐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힘드냐는 것이 요지다.

그 질문을 받은 결혼 3년차 나는 허둥댔다. 당황했다. 그런게 아니라고 나는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잘 살고 있노라고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어졌다. 기분이 확 상한다. 나를 그렇게 보지 말아달라고,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애써 포장하고 싶은,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욱'하고 올라왔다. 결혼해서 그런게 아니라 '나'라서 그런 것 같다고 '내가 조금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고 구차하게 설명했다. 모든 여성 기혼자들을 대표해서 미혼자에게 결혼을 흉볼 수는 없지 않은가. 결혼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A는 듣더니 내가 아까워서 하는 얘기라고 덧붙인다.

내가 아깝다는 것은 내가 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과도 연결이 되는 것 처럼 들린다. '결혼하면 원래 그래?'의 저의도 이 안타까움과 실망감에서 나온 질문인 것이다. 뭐랄까, 허둥대서 답을 하긴 했지만 두고두고 마음의 가시가 됐다. 그 질문은 선을 넘었다. 결혼 후의 삶을 잘 몰라서 '순수하게' 궁금해서 질문한 것 이겠지만 의도야 어찌됐든 나는 내가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에게 캄보디아의 1년도, 앞으로 덴마크에서의 2년도 그저 '남편따라' 오고가는 아내로 보여졌다는 사실이, 아직 나의 삶을 1도 공감하고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혼하면 원래 그래?'라는 질문은 바꿔 말하자면 '난 네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고 느껴지니까.   

나는 나의 삶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방어를 해야만 했고 그래서 적의적인 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무슨 사연으로 유학을 결정하게 됐는지,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건지, 덴마크 한인은 어떻게 사는지 너무나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A에게 마치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구차하게 설명해야만 했던 2시간 내내 나는 피곤했고 지쳤다. 

한 결혼 10년차 되어서 (이 질문을 할 사람도 없겠지만) 이런 질문을 받게된다면 그때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결혼하면 원래 그래'라고. 당신은 (아마 절대 결혼하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산다는 게 원래 맞춰가며 사는 것이라고. 그게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것이라고. 미혼자를 불안하게 하든 어쩌든 가정을 이루면서 사는 행복을 모르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 것인지를 상기시켜줄테다. 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찌질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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