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 세션에서 즉흥연주를 한다는 것

오늘 아주 오랜만에 음악치료사들이 많은 곳에 다녀왔어요. 전국음악치료사협회에서 학술포럼을 여는데 올해 교육 이수 시간도 채울 겸 다녀왔습니다. 음악치료사 자격을 따면 5년간 자격이 유지가 되는데 그 기간 이후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5년안에 80시간의 교육을 들어야 해요. 5년간 80시간이니 1년엔 16시간, 그 중에 50%는 협회에서 주관하는 교육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니 꽤 복잡하죠. 올해 안에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이번 뿐인 것 같아 주제가 뭐든 보지도 않고 무조건 신청했습니다.

뭐랄까. 학술대회같은 곳에 가는 것은 왠지 쑥스러워요. 저처럼 핀둥 핀둥 노는 치료사도 또 없겠죠.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노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새삼스럽게 큰 온도차이로 다가와요. 생기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좀 어리둥절 하기도 해요. 이런 학술대회에는 졸업한 치료사 뿐만 아니라 석사 과정생, 혹은 학부생들까지 오기 때문에 굉장히 에너지가 넘칩니다. 남학우들(?)이나 남성 치료사 분들도 왔다 갔다 합니다. 화기 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 속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힘들어도 다들 즐기면서 이 분야에 붙어있구나 하는 생각은 새삼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이번 주제는 '즉흥연주에서 음악 만들기' 입니다. 음악치료 기법 중에 하나인 '즉흥연주' 분야에서 30년간 경험을 쌓으신 미국의 한 교수님을 초대한 모양입니다. 강의 시간은 6시간 이라는데 좀 너무 했다 싶어요. 한 주제로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이 있을까? 


즉흥, 음악치료의 꽃?

즉흥연주는 뭐, 음악치료의 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 이겠지만. 음악성이 잘 살아 있는 기법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치료사 이라면 이 분야만큼은 더 특별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런것이 음악가 베이스의 치료사들의 연주 실력은 감히 따라갈 수 조차 없이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현란하고 멋드러집니다. 즉흥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이미 그 분야에 전문성을 쌓은 분들은 피아노 연주에 특히 자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1:1 개인세션을 할 때 즉흥기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조금 부끄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자폐가 있는 아이들이나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세션을 할때 주로 사용했는데, 저의 연주에 문제가 있는지 음악 안으로 참여하게 하는 기술이 부족한지 뭔가 '따로 노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아동이 북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에너지나 모양을 반영한 연주를 하는데 아동은 이미 북채를 놓고 다른 곳에 주의를 두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음악과 상관 없는 반응이랄까 나는 이미 지나간 동작을 반영 한다던가 이런 '반영 지연'이 종종 나타납니다. 이럴 땐 참 난감합니다. 계속 즉흥활동을 고집해야하나 다른 활동으로 넘어가야하나 고민하다가 보통은 즉흥을 포기해버리죠. 어쩌면 제 기술 부족이 원인일 수도.


현실과 이상의 차이

강의시간에 본 영상이나 모의 세션을 현실 치료환경에 적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여요. 몇 가지 다음의 이유를 추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첫째, 현실에서는 피아노만 (끝장나게 멋지게) 연주해주는 보조 치료사가 없다는 점.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경우에 치료실 안에 있는 것은 홀로 고분군투하는 치료사 혼자, 혹은 땀을 흘려가며 그룹을 이끄는 치료사 혼자죠. 둘째, 보통의 치료사들은 모두 음악가처럼 피아노를 다루지는 않습(못합)니다. 훈련을 따로 받았거나 본인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들이면 즉흥음악치료 노도프 로빈스 센터 치료사들처럼 연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게 함정). 대학원에서 그런 것을 내내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혹은 미국에 가던지, 길을 알아서 찾아 가야하겠죠.

셋째, 이게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치료사가 원하는 치료사-내담자 간의 그림이 나오기는 아주 드물다는 거에요. 내담자들은 음악에 관심이 없거나 치료사가 내미는 악기에 관심이 없을 때가 많아요. 치료사의 의지와는 다르게 혼자만의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하죠. 치료사의 음악을 거부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거나 귀를 틀어 막거나 때로는 전자 키보드를 꺼버리기도 해요. 내담자가 자리에 착석한 상태에서 치료사의 음악에 반응한다는 것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이런 어려움에도 즉흥연주는 치료 환경에 아주 중요한 기법임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즉흥 음악치료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들어보면 그 음악이라는 게 내담자의 잠재된 음악 아이를 깨우고 흔들 정도로 놀랍도록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이런 음악을 세션 중 사용하려면 치료사의 음악이 풍부 해야겠죠. 즉흥음악은 아름다운 것인데 나의 즉흥이 형편없다면 안 되니까. 왜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지. 이제부터가 겨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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