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말 하는 쪽, 듣는 쪽?

오랜만에 R을 만났다. R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다. 그때 R은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나중에 커서 초콜렛을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되고 싶다고 했다. R은 가끔씩 학원에서 직접 만든 수제 초콜렛이나 빵같은 것을 가져와서 친구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맛이 정말 좋았다. 내가 언젠가 매점에서 페스츄리 빵을 사 먹고 있으면 '거기에 설탕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알면 아마 못 먹을 거다'고 R이 으스대던 것도 기억난다. (그 말은 내 빵 인생에 영향을 줬다. '페스츄리=설탕'이라는 공식으로.) 쇼콜라티에가 되고 싶다던 친구는 제과제빵은 적성에 안 맞다고 접은 지 오래고 지금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음료를 시켜 자리에 엉덩이가 닿자마자 R은 급히 입을 열었다. 최근에 가족에게 생긴 변화로 걱정거리가 늘었다는 점, 엄마와의 관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힘들고 괴롭고 벗어나고 싶은 상황인지를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나를 납득시켜줬다. R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까도 고민해봤다고 한다. 꽤 '건강한' 생각이다. 나는 물었다.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싶은데?' R은 상담 전문가가 자신의 상태를 심리학적으로 진단해주거나 자신이 스트레스 상황을 관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름) 치료사로서 이 친구가 참 건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 자신이 지금 도움이 필요하다는 상태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둘째,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살면서 반복되는 패턴을 경험하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수정해보려는 의지를 들이지 않는다. 살면서 만들어진 습관의 관성은 생각보다 강력한 것이라 계속해서 같은 패턴에 머물러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그런 것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우리는 바쁜 삶을 살아내느라 혹은 남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느라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에 둔감해졌다. 

수없이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에 잠겨있던 시간을 지나 '나 혼자서는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R에게 나는 박수를 쳐줬다. 네가 적어도 힘이 있으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너는 문제를 적어도 인식할 수 있었으니 분명히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한편으로, 내가 상담사라면, 내가 담당 치료사라면 어떤 과정으로 접근했을까, 어떻게 나아지게 도왔을지 상상해봤다. 하지만 나는 이 방면에 아는 것이 없어 상상은 날개를 달지 못했다. 괜히 상담사 빙의 놀이 하느라 질문만 지루하게 늘어놓은 것 같다. 사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몰라 듣기만 했다.

사실 쉴새없이 R이 말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딴 생각을 하기도 했다. 'R이 바른 립스틱 색깔 예쁘다'라던지 'R은 브이넥이 잘 어울리네'같은 뜬금없는 생각은 중간중간 갑자기 튀어나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엔 'R은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구나'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R은 자기 문제를 꽤 설득력 있게 오픈했고 그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상대방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때는 나와 비교하기 마련인데, 나는 썩 말하기를 즐겨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가 오고가겠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내 얘기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나중에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날을 잡은 것처럼 썰을 풀어가는 사람은 그저 내버려 둔다. 주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얘기할 때는 공감하기 위해서 내 쪽에서 드는 예화인 경우가 많다. 

이런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은 나에게 비밀스럽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지만 내가 막상 그렇게 하자니 영 맞지 않았다. 전지적 내 시점으로 사건을 설명하기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풀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도 어려움이 생길 때면 누군가에게 연락해서 공감을 얻기보다는 글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남편과 대화하면서 꼬인 실을 풀어가는 것이 편하다. 혹은 기적적으로 그 시점에 내게 안부를 물어봐주는 소수의 지인들에게 털어놓던지.

다시 돌아와서. 나는 관계 속에서 뭔가를 해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다. 또 수다스럽지도 않다. 말로 설명하는 것은 내게 귀찮은 일에 가깝다. 나에 대한 나 스스로의 오해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보아하니 나는 말을 많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 좋아. 글을 쓰자! (이렇게 글을 써야하는 이유가 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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