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누워 미드 정주행을 하다가

친정에 내려와 소파와 몸이 일주일. 남편과 함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다. 정말이다. 캄보디아에서도 이렇게 시간이 많을 때가 있었다. 남편은 밖에 나가는 쪽을 좋아했기 때문에 등을 떠밀어 줬다. 지금의 나는 말리는 사람도 없고 떠밀어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시간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시간이 쏜살같이 몸을 관통해 흘러 지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 쉬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닌 무의미가 지나간다

나는 요즘 이렇게 소파에 누워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쉬지 않고 미드를 보고 있다. 요즘은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부터 정주행 중이다. 미국의 대형병원에서 인턴과정을 하는 5명의 외과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의사의 ' 자체가 눈여겨 볼만 하다. 인상 깊었던 대사는 이것. '인턴은 사람을 구하지 않을 권리가 없어.' 다시 말하면 '여유 부릴 권리가 없다' . 시간도 그럴 권리도 없이 생과 사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바쁜 외과 의사들을 나는 편안하게 누워 감상하고 있다. 바쁜 삶을 감상한다. 뭔가 아이러니하다

바쁜 것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일 때가 많다. 그레이 아나토미 드라마 인물들처럼 나도 바쁘게, 미친 ,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아닐까? (라고 누워서 생각한다.) 당장 보는 것을 멈추고 소파에서 일어나는 먼저 해야 하는데 '이번 편만 보자' 뭉개버린다.

이게 진짜 나란 말이지. 친정에만 오면 드라마만 드립다 보는 . 중요한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데 나는 커서 뭐가 될까. ( 컸는데) 아마 나는 노력해야 하는 아닐까? 이렇게 물을 시간에 뭔가를 하고 있어 하는 아닐까?

만약 누군가에게 '너는 열심히 살아야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어물쩡거리는 거라면 스스로에게 얘기해주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노력을 하지 못하는 걸까. 누가 나를 막는 것도 아니고 계속 누워있지 않으면 큰일 거라고 협박하는 사람도 없다.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글을 써서는 된다고 펜을 뺏어 부러뜨리고 손가락질을 하며 눈을 부라릴 사람도 없다. 그런데 나는 생산적인 행동은 쉽게 멈추고 누워서 드라마 보는 일은 시간 가는 모르고 있는 걸까.

긴장감, tension, 제약, limit, 한계, 스트레스, push, force. 적절한 이것들이 필요하다. 너무 많이도 된다. 내가 알아차릴 없을 만큼 적은 양도 된다. 스스로 활기 있다고 느끼고 도전의식이 일깨워질 정도의 '최적의 긴장감'. 그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뛰어야하는지 걸어야하는지, 앉아도 되는지 아니면 앉을 타이밍이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이런 긴장감은 원래 자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본인 하기에 달려있다면? 내가 삶에서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누가 저절로 주는 아니라면? 그렇다면 한번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서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나를 통제할 가장 쉬운 장치가 무엇일지. 그것에 단계를 만들 있을지. 긴장감을 점점 (나조차 알아채지 못하게) 높일 있을지. 나를 좋은 방향으로 굴릴 있는 스스로의 장치.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 것이 좋다 나쁘다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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