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누군가를 증오하게 된다

프리레틱스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프리레틱스는 맨몸 운동이다. 도구가 필요 없고 오로지 자신의 체중을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이제 정식으로 시작한지 이틀째가 됐다. 첫째날과 오늘 공백이 있는 까닭은 중간에 발목을 다쳐서 쉬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분량은 힘들지만 과하지는 않았다. 토가 나올만큼 힘들게 시키지는 않는 듯 하다. 한 달간 꾸준히 운동을 해보고 얼마나 성과가 있는지 보고싶다.

막연한 두려움이 다시 찾아왔다. 내가 맡아서 진행해야하는 워크숍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대한 꼼꼼하게 준비하려고 하는데 걱정이 쉬이 줄지가 않는다. 워낙 모두까기 분들이시라 하나하나 맞춰서 진행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하고.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물고 끊임없이 나타난다. 

반복되는 막연한 두려움. 나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열쇠를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게 무슨 자학이란 말인가. 이건 쪼이다 못해 긴장감이 너무 과하다. 아무리 내가 빡쌘 것으로 회귀하려는 연어같은 성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제는 깨달았다. 다시는 자학하지 않으리라.

"나는 늘 자유롭고 싶어요.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직업으로서 부엌에 틀어박히고 싶지는 않아요. 그랬다가는 곧 누군가를 증오하게 될테니까요."

"누군가를?"

"요리사는 웨이터를 증오하고, 그 둘은 손님을 증오한다. 아널드 웨스커(Arnold Wesker)의 '부엌'이라는 희곡에 나오는 말이에요.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삶은 살기 싫어요."

"언제나 속박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머리로 자유롭게 사색하는 것, 그게 네가 바라는 거지?"

"바로 그거예요."

-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학교가 싫고 교수들이 싫은 이유는 이거다. 이 작자들은, 이 시스템은 나를 속박한다. 내 자유를 침범하고 빼앗는다. 나는 언제까지고 이 안에 있다면 이 사람들을 싫어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냥 나오는 편이 낫겠다.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아마 돈벌이를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얽맬지도 모르겠다. '수입이 없는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알바자리를 찾으려 할지도. 그만큼 내 삶에서 돈이 큰 동기를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야 그걸 알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적어도 이제야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쉼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얽매는 삶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제는 신중하게 내 발걸음을 뗄테다. 진심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루 이틀 사흘은 고민해보고 결정해야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충분히 고민해봐야지. 급하게 닥쳐서 내리는 결정은 감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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